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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불교사상 요약

무한대자유 2017. 10. 13. 22:30
 초기불교사상


 인간 석존의 발자취

초전법륜을 시작으로 45년간 계속된 설법과 교단의 원형은 <아함경>과

초기의 <율장>에서 엿볼 수 있다.

초기불교는 부파불교가 시작하기 이전의 시기이다.

부파불교의 시작은 불멸 후 100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초기불교는 아함경전(傳承, Agama)을 바탕으로 전개한 불교이다.

아함경전의 성립은 불멸 후 남긴 가르침을 결집하여 이루어졌다.

결집(結集)은 ‘모으다’는 의미가 있는데, 초기에는 문자로 기록한 것이 아니고

합송(合誦, samgiti)하여 기억하는 형식이므로, 결집이란 합송 즉 ‘함께 암송하는 것’을 뜻한다.

아함경전이 문자화된 것은 기원전 1세기경이다.

최초로 문자화한 언어는 범어가 아니라 마가다어 계통의 방언이라고 추정한다.

이것이 스리랑카로 전해져 팔리라고 불렸다.

팔리(Pali)5부는 <장부(長部, Digha-nikaya)>, <중부(中部, Majjhima -nikaya)>,

<상응부(相應部, Samyutta-nikaya)>, <증지부(增支部, Anguttara-nikaya)>,

그리고 <소부(小部, Khuddaka-nikaya)>이다.

  또한 율장은 계율의 조문을 해석한 <경분별(經分別, Sutta-vibhanga)>,

출가교단에 관한 제반 규칙을 정리한 <건도부(犍度部, Khandhaka)>

그리고 <부수(付隨, Parivara)>이다.

  팔리5부를 한역 대장경에 수록되어있는 <아함경>과 대조해 보면,

한역 <阿含經아함경>은 <長阿含經장아함경>, <中阿含經중아함경>, <雜阿含經

잡아함경>, <增一阿含經증일아함경>의 4아함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역 율장은

<四分律사분율>, <五分律오분율>, <十誦律십송율>, <摩訶僧祇律마하승기율>,

<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이다.  


고통의 인식과 해탈

석존의 최대의 관심사는 인생에 있어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고집멸도의 사성제로 집약된다.

四聖諦사성제란 네 가지 거룩한 진리라는 말이다.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이것들을 정형화하여

고제(苦諦, 苦聖諦, 괴로움), 집제(集諦, 苦集聖諦,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 멸제(滅諦,

苦滅聖諦, 괴로움의 소멸), 도제(道諦, 苦滅道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도달하는 방법)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을 괴로움이라고 전제하고 괴로움을 四苦사고 八苦팔고로 정리한다.

四苦란 태어나는 괴로움[生苦], 늙는 괴로움[老苦], 병드는 괴로움[病苦],

죽는 괴로움[死苦]이다.

이 四苦에 미워하는 이를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원증회고],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괴로움[愛別離苦애별리고],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구부득고], 인간의 존재인 다섯 가지

구성 요소의 괴로움[五陰盛苦오음성고]이 더해져 八苦가 된다.

괴로움의 생기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는 集諦집제이며, 탐(貪, 탐욕), (瞋, 성내는 것), (癡, 어리석음)라든가

欲愛욕애, 有愛유애, 非有愛비유애와 같은 煩惱번뇌에서 비롯된다.

  괴로움의 소멸인 滅諦멸제 涅槃寂靜열반적정이다. 이는 십이연기에서 보면

무명이 완전히 소멸하여 모든 번뇌가 없는 상태이다.

이 괴로움의 소멸을 얻기 위한 방법이 팔정도이다.

팔정도에는 정견(正見, 올바른 견해), 정사유(正思惟, 올바른 마음가짐, 올바른 생각),

정어(正語, 올바른 언어), 정업(正業, 올바른 행위), 정명(正命,올바른 생활),

정정진(正精進, 올바른 노력), 정념(正念, 올바른 기억), 정정(正定, 올바른 선정)이 있다. 

 

십이연기를 대표로 하는 연기사상

정통 바라문의 전변설과 신흥 종교가들의 집적설에 반해 고타마 싯다르타는

보리수 아래에서 緣起연기의 진리를 깨달았다.

연기(緣起 pratitya samutpada)란 무엇을 연하여(pratitya) 일어나는 것(samutpada)이라는

의미로 일체의 사물은 다양한 원인과 조건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란 뜻이다.

일체 사물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상주불멸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상호간에 서로 의존하여 성립하는 것이며[相依相資상의상자],

서로가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는 연관성으로 성립된다.

  정통 바라문계의 사상적 특징을 전변설(轉變說, parinamavada)이라고 한다.

이는 우주의 원리인 브라흐만[梵]으로부터 세계가 생겨났다고 하는 것이다.

한편 신흥사상가들인 사문계의 사상적 특징은 적취설(積聚說, arambhavada)

또는 집적설(集積說)이라고 한다. 이는 독립된 많은 원리와 요소에서 결합

하여 이 세계가 구성되었다는 설이다. 이들 집적설을 주장하는 사문계 중에는

유물론적 사고가 강하고 업(karma)설과 인과응보를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고타마 싯타르타는 이 두 사상계의 수행방법인 修定主義(수정주의, 전변설을

주장하는 바라문계의, 선정을 수행함으로써 해탈을 얻는다는 주장)와 苦行主義(고행주의,

집적설을 주장하는 사문계의, 고행을 통해 해탈한다는 주장)를 극복했다.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이 세계가 상호의존하는 관계에 의해

생성하는 연기의 법칙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십이연기의 형태로 연기를 설명한다.

십이연기의 12지는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처(六處),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이다.

십이지 각각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1) 노사(jara-marana)란 인간의 육체가 노쇠하여 마침내 사멸하는 것이다.

넓게는 일체의 모든 괴로움을 뜻한다

2) 생(jati)이란 각각의 중생이 생겨나는 것, 출생하는 것, 여러 가지 구성요소가

출현하는 것 등을 말한다.

3) 유(bhava)는 생존을 말하며 생존이란 미혹한 생존, 윤회하고 있는 생존을 의미한다.

4) 취(upadana)는 집착의 의미로 인간의 미혹한 생존은 집착에 근거한다.

5) 애(tanha)는 갈애(渴愛)라고 번역되며 능동적으로 만족을 구하는 인간의 본능적,

맹목적, 충동적 욕망을 말한다.

6) 수(vedana)는 대상의 인상을 받아들여 생겨난 苦, 樂, 非苦非樂비고비락의 감수를

말한다.

7) 촉(phassa)은 수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고락 등의 감수는 감각기관[根]과 대상[境]과

감각작용[識]의 접촉에 의해 성립하므로 이들 세 가지의 접촉이 감수의 조건이 된다.

8) 육처(salayatana)는 대상과 감각기관과의 대응작용이 이루어지는 장소, 영역을

말하며, 구체적으로는마음라고 하는 여섯 가지이다.

9) 명색(nama-rupa)은 식이 주관적인 면을 나타내는 데 반해, 그 대상인 객관적인

면을 나타낸다.

10) 식(vinnana)은 인식작용, 즉 인식 판단의 작용 또는 인식 판단의 주관을 말하며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 등을 들 수 있다. 이 식은 명색의 조건이 됨과

동시에 “명색을 연하여 식이 있다”라고도 하여 인식의 주관작용과 그 대상은 서로

의존하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11) 행(sankhara)은 일반적으로 ‘잠재적 형성력’, ‘잠세력(潛勢力)’의 의미를 내포

하고 있어 ‘만들어진 것[有爲]을 만들어내는 힘’을 의미한다.

12) 무명(avijja)이란 무지를 말하는데, 경전에 의하면의 四諦사제

무지한 것이며, 보편적 진리인 연기, 무상, 무아 등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무명은

근본 번뇌로 일체의 미혹, 집착, 번뇌의 근원이 된다. 

  

삼법인과 중도에 의한 연기의 실천

연기의 세계를 깨닫는 방법으로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삼법인이 있으며,

중도는 불교수행의 근본 자세이다.

  삼법인(三法印)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세 가지이고, 여기에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더하여 사법인(四法印)이라 하기도 한다.

법인(法印)이란 법의 도장이나 징표를 의미하며 ‘진리가 되는 도장’이다. 

 제행무상이란 모든 만들어지고 형성된 것은 항상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行인 상카라(sankhara)는 ‘만들어진 것’으로 여러 가지 인과 연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원인이 없으면 생성의 고리는 끊어지고 만다. 인과 연에 의해 연기하는

세계는 무상하고, 연기하므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제법무아의 ‘무아(無我)’란 ‘안아타(anatta)’인데, ‘비아(非我)’라고도 번역되는데,

‘아가 아닌 것’ 혹은 ‘아를 갖지 않는 것’이란 의미이다. 무아란 원래 <우파니샤드>를

의지하는 인도 전통 바라문의 아트만 설을 부정하는 초기불교의 교설이다. 따라서

무아설은 ‘나의 것’ 혹은 ‘자신의 소유’라는 관념의 부정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생명을 구성하는 요소를 오온(五蘊)으로 요약한다. 즉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며, 온(蘊, khandha)은 모임의 의미로 이 다섯 요소가 결합된 것을

오취온(五取蘊)이라 한다.

색(色, rupa)은 물질적인 형태인 육체를 말한다.

수(受, veda-na)는 감수작용을 말하고, 상(想)은 개념표상의 작용이고, 행(行)은

형성작용 혹은 정신적 작용을 말한다.

또 식(識)은 식별작용 혹은 인식작용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이 오취온을 살펴보면 그 어느 곳에도 나라고 내세울 것이 없다.

단지 결합하여 형성된 순간의 연속에 불과하다.

따라서 나라고 주장할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무상과 무아를 깨달으면 고통이 소멸하여 열반을 얻는데, 이를 ‘열반적정’이라고 한다.

‘열반’이란 불이 꺼진 상태 즉 연소의 괴멸(壞滅)이다.

욕망의 불 혹은 번뇌의 불이 꺼진 상태이다.

불교에서는 욕망을 삼독(三毒)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그것이다.

이 삼독의 불이 꺼진 것이 열반이다. 팔리어로는 닙바나(nibbana)이고, 범어로는

니르바나(nirvana)라고 한다.

중국에서 멸도(滅度), 적멸(寂滅), 원적(圓寂) 혹은 단순히 멸(滅)이라고 번역했다.

붓다는 수행자의 실천적 입장을 중도(中道)로 표현했다.

중도란 마지마 파티파다(majjhima patipada)의 번역어이다.

‘마지마’는 ‘중간’ 혹은 ‘적당하다’는 의미이고, ‘파티파다’는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

혹은 ‘수행하는 도’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중도란 적당한 실천 혹은 적절한 수행이다.

중도는 비고비락(非苦非樂)의 중도라고 한다.

이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수행방법이 팔정도이다. 중도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니지만

단순히 중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눈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절도 있는 수행

방법이다. 

 

중관사상 


<반야경>의 공으로 연기설 설명

<우파니샤드>의 아트만 사상과 설일체유부의 법체항유설을 타파하기 위해

<반야경>의 공사상이 탄생했다.

  공(空)은 대승불교의 근본개념으로 <반야경>을 시작으로 체계화되었다.

대승불교에서의 공은 자성(自性, svabhava), 실체(實體, dravya), 본성(本性, prakrti),

자아(自我, atman) 등과 같이 궁극적으로 실재하다고 믿는 것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하는 사상이다.

  공의 원어 sunya는 원래 ‘부풀어 오른’, ‘속이 텅 빈’, ‘공허한’이란 의미로

속이 비어 있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sunya의 의미는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는 상태’로 A에게는 B가 없다는 형태로 쓰인다.

sunya의 추상명사형인 sunyata는 공의 성질을 의미해 ‘공성(空性)’, ‘공상(空相)’ 등으로

한역하고 영어로는 emptiness 또는 voidness라고 한다.

 대승불교의 공사상은 초기불교의 무아설과 연기설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불과하다.

대승불교의 시대가 되면서 붓다의 연기설에 입각한 무아설은 공으로 정형화되어 표현된다.

이 공사상을 집대성한 것이 대승불교를 출현시킨 <반야경>이다.

따라서 <반야경>의 중심사상은 공관(空觀, 공이라고 세계를 바라보는 관법)으로

사물에 본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반야경>에서의 공사상은 단지 바라문의 아트만 사상을 부정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불교 내부에서 무아를 잘못 이해하여 고정된 자아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해하고 있는

부파불교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

부파불교 중 특히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삼세실유(三世實有, 현상은 무상이나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고정불변한 것이 있다는 주장)사상은 대승불교가 타파하기 위한 대상이었다.

<반야경>의 공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하는 학파를 중관학파(中觀學派, Madhyamika)라고

부르는데, 이를 개창한 인물은 용수(龍樹, Nagarjuna, 150~250)이다.

그는 <반야경>의 공사상을 붓다의 무아와 연기 그리고 중도에 입각해서

<중론(中論, Madhyamakakarika)>을 저술하고 공사상을 체계화했다.

용수의 <중론>을 바탕으로 공사상을 연구하는 불교학자들의 그룹을 중관학파라고 부른다.    

 

<중론>으로 공사상을 체계화시킨 용수

용수의 출현에 의해 초기 대승경전의 사상이 <중론>에서 공사상으로 확립되었다.

용수는 2세기경에 남인도에서 출생했으며 범어명은 나가르주나(Nagar-juna)이다.

그의 모친이 아르주나 나무 아래에서 그를 출산했기 때문이며,

나가(龍)의 인도를 받아 도를 이루었다는 설화에 근거하여 ‘나가’와 ‘아르주나’를 합쳐

‘나가르주나’라고 불렀다.

용수는 처음에는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사상에 정통하였으나, 후에 대승불교에 입문해

공사상을 철학적으로 대성시켰다.

한역(漢譯)에 남아 있는 용수의 저작으로 중요한 것은

<대지도론(大智度論, Mahaprajnaparamitasastra, 大般若波羅密論대반야바라밀론)>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이다.

<대지도론>은 <대품반야경>을 해석한 것이고 <십주비바사론>은 <화엄경>의 <십지품>을

풀이한 것이다.

  <중론>은 용수의 주요한 저술로서 27품 450여 게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론>의 중요한 사상은 공이 연기(緣起)라는 사실과 이제설(二諦說, 두 가지진리)로서

세속제(世俗諦)에서 승의제(勝義諦)와 열반을 추구하는 것이 골자이다.

용수는 연기하는 것은 공이며 사물이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무자성이며

고정불변의 자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 ‘연기=공=무자성’이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용수는 고정불변의 자성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자성의 개념은 우리들의 망상인

희론(戱論, prapanca)에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중론>의 귀경게(歸敬偈)에서 연기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연기는

불멸(不滅), 불생(不生), 부단(不斷), 불상(不常), 불래(不來), 불거(不去),

불이(不異), 불일(不一)하며 희론이 적멸(寂滅)한 것이며 길상(吉祥)한 것임을

가르쳐 주신 정등각자(正等覺者)에게 귀의한다.”

  한편 세속제와 승의제의 이제로 구별하는 이제설은 세속이 연기와 공성으로 지탱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승의제이며 열반으로 향하는 길임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따라서 제24장에서 “세속제에 의하지 않으면 승의제는 성립되지 않고 승의제에 의하지 않으면

열반은 얻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중론>에서 용수는 <반야경>에서 말한 공사상을 석존이 말한 연기설과 같은 차원에

놓고 이론적으로 해명함으로써 대승사상을 확고히 정립했다.

 

유식사상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지향하는 학파

유가행파는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과 <해심밀경(解深密經)>을 소의경전으로 하여

오직 마음에서 만들어진다는 일체유심조를 철학적으로 체계화하는 학파이다.

유가행파 혹은 유식학파는 일체의 법은 오직 식(識, Vijnapti, 表象표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식설(唯識說, Vijnanavada)을 주장하여 중관학파의 공사상과 다른 해석을 펼쳤다.

유가행유식사상은 <해심밀경(解深密經, Samdhinirmocanasutra)>과 <유가시지론>을

의지해 수행한다.

<해심밀경>은 중기 대승경전으로 삼성설(三性說)로서 공사상을 말하고 있으며

<유가사지론>은 유가행파를 개창한 미륵의 논서이다.

이외에 유가행파에서 중요한 논서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 <섭대승론(攝大乘論)>,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

<유식삼십송(唯識三十論)> 등이 있다.

  유가행파는 4~5세기에 인도에서 출현했다.

당시의 잘못된 불교사상의 해석을 바로잡기 위해서 있음과 없음이라는 극단에 치우쳐

공사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불교학자들에게 이 유무를 초월한 비유비무(非有非無)의

중도(中道)를 바르게 확립하기 위해 인식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식일원론(識一元論,

오직 식뿐이다)을 주장하게 되었다

  식일원론이란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오직 식만이 존재하고 외계물은

식에 투영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외계물은 무상한 것으로 비유비무의 공이라고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가행파는 인간의 정신과 현상을 식의 활동으로 설명하고 순간순간 생멸하면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식의 흐름(相續상속, samtana)과 변화(變化, parinama)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현상은 실체가 없고 오직 식만이 존재한다는 유식무경(唯識無境)의

식일원론(識一元論)이다.

  유가행파의 최고 문헌은 <유가사지론>과 <해심밀경>이다. <유가사지론>은 소승의

아비달마의 교의(敎義)를 종합하고 개정하여 대승불교의 교의체계로 전환시킨 것이다.

<해심밀경>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불설의 비밀스러운 의미[삼디, samdhi]를

해명하는 것[니르모차나, nirmocana]을 의미한다.

이는 중기대승경전의 하나로 3~5세기경에 편찬되었다고 한다.   

 

식설(識說)과 삼성설(三性說)로 대승사상을 재해석

유가행파는 설일체유부의 유에 대한 집착과 중관학파의 공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무에 집착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식설과 삼성설로 <반야경>의 공사상과 비유비무의

중도를 재해석했다.

유가행파가 중관학파와 다른 철학적 특색은 인식론인 식론(識論, Vijnana-vada)으로써

윤회의 주체를 설정하는 데 있다.

이 학파는 유식설이 불설임을 증명하기 위해 <화엄경> <십지품>의 삼계유심(三界唯心)을

증거로 제시했다.

삼계유심이란 연기에 의해 형성되는 윤회의 세계가 오직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따라서 십이지연기 중 식지(識支)를 중심으로 연기를 설명한다.

이때의 식은 행위를 유발시키는 탐욕상응심(貪慾相應心)과 무명심(無明心)의

성격을 띠고 있고 윤회의 주체인 망심(妄心)이다.

  불교의 난제는 무아(無我)라면, 무엇이 어떻게 윤회하는가라는 의문이다.

십이지연기를 실체적인 구조로 규정하는 설일체유부는 업을 원동력으로 하여

윤회하는 업감연기(業感緣起)를 말한다.

이는 식이 과거세의 무명을 인연하여 행위를 유발하여 과보를 받는 것이

현재세의 순간이라고 한다.

유식설에도 이 구조는 변함이 없으나 식을 찰나멸(刹那滅, 순간으로 멸함)이라 규정하여

새로운 양상을 만든다.

이 구조에서 또 다른 난제는 찰나에 멸하는 식이 어떻게 과거의 무명과 연결하여

미래의 업을 생성할 수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유가행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식인 아뢰야식을 설정한다. 

  아뢰야식은 일체종자심식(一切種子心識, Sarvabijakacitta)이라고 하여

과거의 업을 보관하는 종자(種子)를 말하는데, 그것이 탐욕과 아집의 대상이

된다. 이 아뢰야식을 성장시키는 집애(執愛, upadana)는 감각기관과 분별에

의거한 언설희론(言說戱論)의 습기(習氣)에 의해 아타나식이 생성되고, 전오식

(前五識, 안 이 비 설 신 의)과 분별의식(分別意識, 의식)이 전기(轉起)하여 대상을

인식하고 그것이 습기가 되어 다시 아뢰야식에 저장된다. 이와 같은 순환을

아뢰야식 연기설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은 개개인의 심층에 존재

하는 의식으로서, 아뢰야식의 인연작용에 의해 현상계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즉 아뢰야식이 현상을 창출해내는 종자를 포함하고 있고, 사람이 인식작용을

일으킬 때 과거의 경험인 종자가 인식작용에 영향을 미쳐 선악을 구별한다.

또한 현재의 대상물의 인상(印象)의 경험이 다시 아뢰야식에 전달되어 종자를

만들어 보관하는 것이다.

  三性삼성과 三無性삼무성설은 공과 무자성의 사상을 분석적으로 설명한 것이.

삼성이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성실성(圓成實性)이고,

삼무성은 각각에 대응해 상무자성(相無自性), 생무자성(生無自性), 승의무자성

(勝義無自性)을 말한다.

  변계소집성(Parikalpitasvabhava)이란 분별하는 성질을 말하며 범부(凡夫)가

실체가 아닌 것에 집착하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개념규정(相, laksana)

에는 실체성이 없으므로 상무자성이라고 한다.

  의타기성(Paratantrasvabhava)이란 다른 것에 의존해서 생기(生起, utpatti )하는

성질을 말하며, 일체의 현상은 서로 의존하여 화합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생기해서 실체성이 없으므로 생무자성이라고 한다.

원성실성(Parinispannasvabhava)이란 완전한 세계를 말하며 진리세계인 진여(眞如)를

의미한다.

진여도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실체적인 것이 아니므로 공이다.

단순한 공이 아니라 승의(勝義, Paramartha)에서 공이므로  승의무자성이다.

  유식사상에서는 이와 같이 세 가지 의미로 공성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의타기성과 생무자성이다. 의타기성은 연기해서 생기하는 성질과 관련이

있고 식의 생기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미륵, 무착, 세친의 유식사상 기반

유가사들의 전통 수행방법인 미륵의 <유가사지론>에 의해 체계화되고 무착과 세친에 의해

유식무경(唯識無境)의 유식사상의 이론이 정립되었.

미륵(彌勒, Maitreya)이 실존인물인지 당래불(當來佛)인지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미륵이 저술했다는 <유가사지론>이 유가행파의 최초의 논서이다.

미륵의 학설을 바탕으로 유식설을 조직하고 체계화한 것은 무착(無着, Asanga, 395~470)과

그의 동생 세친(世親, Vasubandhu, 400~480)이다.

  무착은 북인도 출신으로 처음에는 부파교단에 출가했으나 후에 대승불교에 입문했다.

미륵보살을 친견하고 도솔천에 가서 미륵보살에게 대승의 공관과 유식교학을 배워

아유타국으로 돌아와 가르침을 전했다.

무착은 <섭대승론(攝大乘論)>,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대승아비달마집론

(大乘阿毘達磨集論)> 등을 통해 유식사상의 기초를 체계화했다.

  세친은 무착의 동생으로 처음에 설일체유부에 출가하여 부파의 교학을 간결

하게 체계화한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형의

권유로 대승에 입문하였다. 무착은 대승을 비방하는 동생을 염려하여 병을

빙자해 자신의 처소를 방문하게 하고 <십지경>에 나타나는 유식사상을 보여

주어 동생을 대승에 입문시켰다. 세친은 대승을 비방한 죄를 참회하기 위해

열심히 대승교학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데 주력했다. 그의 저술로는 <대승백법

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 <십지경론(十地經論)>,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등이 있다.

  이 중 <유식삼십송>은 아뢰야식 연기설에 의거한 식전변설(識轉變說)로

유식사상을 체계화하고 있다.    

 

인식되는 형상이 허위인가 진실인가

인도철학에서 사물이 의식에 투영될 때 사물 그 자체를 자각하느냐

그림자를 자각하느냐의 문제가, 불교에서는 인식된 형상이 허위냐

진실이냐 하는 문제로 발전했다.

유가행파는 근본적으로 유형상인식론(有形相認識論, 마음 속에 생긴 형상에 의해

외계물을 추론한다고 생각하는 학설)에 속하나 세친 이후 인식된 형상이 허위냐 진실이냐는

논쟁에 의해 무상유식론과 유상인식론으로 나뉜다.

무상유식론은 식이 형상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설이고, 유상유식론은

식이 형상을 포함하고 있다는 설이다.

무상유식론은 무착 - 세친 - 안혜 - 진제로 이어지고, 유상유식론은 진나 - 무성 -

호법 - 계현 - 법칭으로 이어졌다. 이들 두 흐름의 대표적인 사상가는 안혜와 호법이다.

  무상유식론은 인식하는 과정에서 식에 투영된 형상은 허망한 것이므로 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상유식은 진제에 의해 중국에 전래되었다.

그가 한역한 <섭대승론>에 의지해 성립한 섭론종은 무상유식의 학설을 고수했다.

  인식할 때 식에 나타나는 형상을 실재라고 주장하는 유상유식을 창안한

진나(陳那, Dignaga)는 유식학의 식론을 인식론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인식의 성립이 아뢰야식의 종자에 의해 나타나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종래의 학설이 미흡하다고 생각하여 직접지각의 성립을 대상과 주관의

관계로 설명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식에 나타나는 형상을 의타

기성이라고 하고 외계의 대상물의 실재를 부정함으로써 유식 본래의

취지를 살렸다. 이 유상유식설은 인도의 계현에게서 유식을 배운 중국의

현장에 의해 중국에 전래되었고, 호법의 <성유식론>을 한역하고 연구함

으로써 성립한 법상종에 의해 발전되었다.


<유식삼십송>에 대한 다양한 주석가들의 출현

세친의 불후의 명저 <유식삼십송>에 대한 주석서가 십대 논사에 의해

씌어지고, 유식사상이 발전했다.

  세친이 만년(晩年)에 쓴 <유식삼십송>은 직접 주석을 남기지 못했다.

세친 이후 많은 유가행파 학자들이 주석을 썼다. 현장은 십대논사를

설정했는데, 이 십대논사가 주석한 주석서 중에 범문(梵文)으로 현존하는

것은 안혜의 주석서인 <유식삼십송석>뿐이다.

  안혜(安慧, Sthiramati, 510~570)의 유식사상의 특색은 일분설(一分說)이다.

그는 식전변(識轉變)을 주로 심식의 발생론적 입장에서 전개하고 있는데, 주체와 객체는

허망하고 자증분(自證分)만 의타기성으로 실재한다는 학설이다.

안혜는 무착과 세친 유식설의 전통을 고수하고자 무상유식에 입각하여 미륵과 세친의 저술인

<유식삼십송>, <대승장엄경론>, <중변분별론> 등에 주석을 남기고 있다.

호법(護法, Dharmapala, 530~561)의 유식학의 특색은 인식구조를

사분설(四分說, 네 가지 인식 작용의 과정)로 완성시켰다는 점이다.

무착과 세친은 인식을 주체와 객체로 나누어 설명했고, 진나는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객관으로서의 식[相分상분]과 주관으로서의 식[見分견분]

인식의 경과로서의 자증분(自證分)의 삼분설(三分說)로 설명했다.

호법은 진나의 학설을 발전시켜 자증분을 증명하는 증자증분(證自證分)

을 세워 사분설을 확립했다.

 

화엄사상


대승불교의 깨달음의 세계

<화엄경>은 모든 중생이 그대로 부처이고 만물이 법신인

비로자나불의 화현(化現)임을 일깨워 주는 대승경전이다.

  <화엄경>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약칭이며 초기대승경전에 속한다.

<화엄경>은 한 티끌 가운데 세계를 온통 포함하고 있다고 하고,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一卽多多卽일즉다다즉일]라고 표현한다.

즉 개체적 존재가 존재 전체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광경을 <화엄경>에서는 인드라망의 그물로 비유한다.

  인드라망이란 인드라(Indra)의 그물, 즉 제석천궁에 있는

보물로 그물코마다에 달린 구슬이 서로 비추게 되어 있다.

이렇게 비친 구슬이 또 다른 구슬을 비추는 모습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형태[重重無盡중중무진]에 비유해, 상호의존하는

관계로 설정되어 있는 이 세계의 구조를 이해시키려는 것이다.  

  60권 <화엄경>의 <야마천궁보살설게품(夜摩天宮菩薩說偈品)>에서는 범부의 마음과

부처의 마음에 차별이 없음을 이야기한다

[心佛衆生是無差別]. 또 더 나아가 <십지품>에서는 삼계는 헛것이고 다만 마음의 조작

[三界唯心但是一心作]이라는 유명한 유심게(唯心偈)가 있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마음은 법상종에서 말하는 망심(번뇌심)과는 달리 본래 청정심을 말한다.

 이 청정심을 <열반경>에서는 불성(佛性)이라고 하며,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의 구조와

활동을 밝히는 것이 <화엄경>의 요지이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한역 <화엄경>에는 세 종류가 있다.

60권, 80권, 40권으로 구성된 <육십화엄>, <팔십화엄>, <사십

화엄>이 그것이다.<육십화엄 >이 가장 먼저 번역된 것인데,

불타발타라(Buddhabhadra, 359~429)에 의해 421년에 역출

되었다. 진경(晉經) 또는 구경(舊經)이라고도 불린다.

<팔십화엄>은 실차난타(Siksananda, 652~710)에 의해 대주시대(大周, 695~699)에

번역된 것으로 주본(周本) 혹은 신경(新經)이라고 부른다.

<화엄경>의 완역은 이 둘뿐이고, <사십화엄>은 당나라 때 반야다라가 역출한 것으로

 <화엄경> 중 <입법계품(入法界品)>만의 번역이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형태의 <화엄경>은 대략 250~350년대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화엄경>이 편성된 곳은 우전(于闐)과 관련된 중앙아시아 지방으로 보인다. 

  <화엄경> 가운데 핵심은 <십지품>, <여래성기품(如來性起品)>, <입법계품>이다.

  <십지품>은 보살이 수행하는 십지(十地, 열 가지 단계)의 체계를 논하고 있으며

열 단계를 거쳐 궁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한다.

십지는 차례대로, 환희지(歡喜地), 이구지(離垢地), 발광지(發光地),

염혜지(焰慧地), 난승지(難勝地), 현전지(現前地), 원행지(遠行地),

부동지(不動地), 선혜지(善慧地), 법운지(法雲地)이다.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수행을 거쳐 최후에 보현보살을 만나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선재동자는 55개의 장소에서 53선지식을 방문하는데, 선지식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보살은 물론이고 장자, 현자, 바라문, 외도, 비구니 등등 각양각색의 직업과 신분을 가지고 있다.

  이 두 품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여래성기품>이다.

성기(性起)란 불성현기(佛性顯起)의 준말로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갖추고 있음을 말한다.

이 성기사상은 <화엄경>의 핵심이다.

인간이 불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불성에서 거짓이 소멸하고 모두가 진실이고 참이라는 것이다.  

 

 <화엄경>의 중국적 이해의 결실

400년경에 전래되어 한역(漢譯)된 <화엄경>은 <화엄경>을 최고로

자리매김하는 교판(敎判)과 중국인의 의식과 사상에 융화되어 십현

연기(十玄緣起)와 육상원융(六相圓融)과 같은 사상을 만들어 화엄종을

여는 기초가 되었다. 

  화엄종은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여 수행하는 중국의 종파이다.

중국에서 <화엄경>을 이해하는 데는 약 200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다.

중국에서 화엄종을 개종하는 데 영향을 준 인물로 혜명(531~568)과

담천(542~607)을 들 수 있다. 혜명은 장자와 <화엄경>의 정수를 찾으

려고 애쓰다가 장자의 <제물론>에서 만물이 한 몸이고 평등하다는 것과

<화엄경>의 일즉다(一卽多) 사상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상현부>를 저술

했다. 담천은 장자의 <제물론>에 착안하여 시시비비를 논하는 것을 그만

두고 무심 가운데 불성이 나타남을 밝히려고 했다. 이들의 사상을 받아들여

화엄을 수행하고 화엄종의 개조(開祖)가 된 인물이 두순(杜順, 557~640)이다.

  화엄종의 대성자 법장(法藏, 643~712)은 <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에서

오교의 체계로 불교를 체계화했다. 오교란 소승교(小乘敎), 대승시교(大乘

始敎), 종교(終敎), 돈교(頓敎), 원교(圓敎)를 말하는데, 수많은 불교경전을

이 다섯에 배속시키고 <화엄경>은 대승원교의 가르침이라 하여 가장 높은

지위를 부여했다. 원교는 사사무애(事事無碍)를 밝히는 것이다. 화엄사상

에서는 진리의 세계를 법계(法界)라고 칭한다. 사물과 진리의 세계를 네

가지 법계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사법계(事法界), 이법계(理法界), 이사무애

법계(理事無碍法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가 그것이다. 사법계는

현상의 세계를 말하며 이법계는 공의 세계 즉 본체를 말한다. 이사무애법계는

현상과 본체의 관계를, 사사무애법계는 현상의 세계에서 각각의 존재 간의

관계를 설명한다.

  화엄종의 핵심사상은 사사무애의 세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십현연기(十玄

緣起) 또는 십현문(十玄門)과 육상원융(六相圓融)으로 체계화했다. 십현연기란

사물들의 원융무애한 관계를 열 가지 관점에서 설명한 것이다. 이 사사무애의

무진연기는 해인삼매의 선정이 선행되어야만 드러나는 세계이다. 즉 종교적

체험의 세계이다.

  육상원융은 십현연기와 더불어 무진연기의 실상을 말하는 중요한 사상이다.

육상은 총별(總別), 동이(同異), 성괴(成壞)의 세 쌍의 대립 개념을 가지고 서로

원융무애한 관계를 말했다. 즉 하나에 다른 다섯이 포함되어 있으나 여섯의

각각이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는 법계연기를 말했다.

  법장은 <화엄오교장>에서 집을 비유로 육상을 설명했다. 즉 총상(總相)은

집 전체이고 별상(別相)은 기둥과 창문 등 집의 각 부분을 말한다. 총상은 전체

이고 별상은 부분인데 집과 기둥이나 서까래 등을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관계를

말한다. 동상(同相)은 기둥과 서까래 등이 각각 다른 사물이나, 하나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상이고, 하나의 집을 구성하고는 있으나 낱낱을 보면 다른 것

이기 때문에 이상(異相)인 것이다. 이는 다양한 의미가 서로 어긋나지 않고 하나

라는 전체를 이루고 있음을 나타낸다. 성상(成相)은 각각의 재료가 서로의 기능과

인연에 의해 집을 이루기 때문이고, 괴상(壞相)은 각각이 서로 자신을 고집하면

하나로 이루질 수 없기 때문에 괴상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서로 대립하는

개념을 가지고 사물을 설명하는 것이 육상원융이다.     

 

지엄과 법장에 의한 화엄사상의 성립

지엄에 의한 화엄사상의 기틀은 당나라의 법장에 의해 체계화되고

화엄종으로 개창되었다.

화엄조사설은 화엄오조설이 대표적이다. 이는 법순두순(法順杜順, 557~640)

-지상지엄(至相智儼,602~668)-현수법장(賢首法藏,643~712)-청량징관(淸凉澄觀,738~839)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로 이어지는 법통설이다. 

  화엄의 초조인 두순은 화엄사상을 체계화한 것이 아니라, 보현행을

실천한 인물이다. 제2조인 지엄은 두순의 제자이다.

점차 <화엄경>에 매력을 느낀 지엄은 이 경을 중심으로 교학을 형성해 갔다.

<화엄경>의 주석서 <수현기>를 27세에 저술했다.

<수현기>에 나타나는 지엄의 화엄사상은 유식과 화엄을 통합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그 외에 만년의 저술인 <화엄경공목장>4권과 <일승십현문>2권이 중요하다.

지엄의 문하에는 의상(義湘)과 법장 같은 제자가 있었다.

의상은 해동화엄 초조가 되고, 법장은 지엄의 뒤를 계승해 중국화엄 제3조가 되었다.

  제3조인 법장은 지엄의 화엄사상을 계승해 대성시킨 인물이다.

법장은 범어에 능통해 <화엄경>의 <입법계품>을 번역할 때 범문의 교감(校勘, 勘校라고도 하며,

 대조하여 바로 잡음. 조사하여 고침. 교정함)을 맡는 것을 시작으로 제운반야, 실차난타,

의정 등과 같은 당시의 역경승들과 역경에 종사한 역경대덕이었다.

법장의 저술 중 화엄사상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와

<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을 들 수 있다.

<탐현기>는 <육십화엄>의 주석서로서 법장의 화엄사상을 엿볼 수 있으며,

<화엄오교장>은 화엄종의 오교판을 바탕으로 화엄학을 체계적으로 조직한

화엄입문서이자 개론서에 속한다. 법장의 <화엄오교장>에는 화엄 고유의

사상체계를 4개로 분류한다. 즉 삼성동이의(三性同異義), 연기인문육의법

(緣起因門六義法), 십현연기무애법(十玄緣起無碍法), 육상원융의(六相圓融義)

이다. 법장은 <기신론>의 진여사상을 바탕으로 삼성설로 연기 세계의 무애를

증명하고 이론화함으로써, 지엄과 다른 화엄교학의 사상적 위치를 점유

(占有)했다. 

 

화엄사상과 선의 조화, 교선일치(敎禪一致)

징관과 종밀에 의해 화엄종에 선이 도입되어 화엄교학과 선을 융합하는

교선일치사상을 선양(宣揚)했다. 징관은 선보다 화엄이 우월하다는 입장

에서, 종밀은 선과 화엄을 동일시하는 입장에서 교선일치를 주장했다.

  화엄종의 제4조는 징관이며, 청량대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그가

오래 주석한 중국의 오대산이 여름에도 시원하다고 하여 청량산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징관의 주요 관심사는 화엄과 선이었다. 그는 남종선과

북종선을 두루 배웠다. 징관은 법장의 화엄사상을 계승했으나 화엄교학에

선을 관련시켜 독창적 사상을 발전시킨 점이 특색이다. 그의 주요저술에는

<화엄경소>와 <화엄경수소연의초(華嚴經隨疏演義鈔)(약칭, 연의초)>가 있다.

  징관의 교판론은 법장의 오교판을 계승하고 있으나 소승교, 대승시교,

종교, 돈교, 원교 순인 법장의 오교판과 달리 돈교와 종교의 순서를 바꾼

것과 돈교에 선종을 배열한 점이 특이하다. 또한 그는 사법계(四法界) 중에

禪을 이법계와 이사무애법계에 배열해 화엄의 사사무애법계에는 미치지

못함을 말해 화엄이 선보다 우월함을 보이고 있다.

  제5조 종밀은 징관의 선과 관련된 화엄사상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종밀의 저서에서 중요한 것으로 <원각경대소>와 <대소초>, <선원제전집도서

(禪源諸詮集都序)>, <원인론(原人論)> 등을 들 수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유학을

공부한 인연으로 <원인론>을 저술하여 불교, 유교, 도교의 삼교일치를 주창

하였다. 또한 <선원제전집도서>에서는 선교일치사상을 펼쳤다. 종밀사상이

징관과 다른 점은 화엄교학과 선을 대응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교선일치로

귀결했다는 점이다. 종밀의 교선일치는 하택선을 최고의 경지로 받들고

교학적으로 체계화하는 데 있다.  


원효와 의상의 실천적 화엄사상

원효와 의상이 중심이 되어 신라의 화엄사상이 발달했는데, 이들은 중국

불교의 교학적인 화엄사상과는 달리 실천적 화엄사상을 전개했다.

  원효(元曉, 617~686) 사상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기신론>의

여래장사상이다. 원효의 <기신론>사상의 특징은 마음에서 어떻게 부처의

활동이 발생하는가 하는 점에 착안을 두고 있다. 원효의 기신론관은 화엄

사상에 가까운 것이다.

  신라의 화엄사상을 정립한 인물은 의상(義湘, 625~702)이다. 의상은 8년

동안 지엄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로 자신의

화엄의 세계를 드러냈다.

칠언 삼십구의 간결한 시로 화엄사상을 요약하여 해인삼매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의상의 화엄사상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문헌이며 법계도장, 법성도, 법성게,

해인도 라고도 불린다.

의상이 법성게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상은 현상의 세계야말로 진리의 세계라는 것이다.

의상의 화엄사상은 철학적인 이해보다 실천에 중심을 두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의상은 신라로 귀국하여 부석사를 건립하고 화엄전법의 도량으로 삼았다.

후에 화엄십찰을 건립하는데, 유명한 곳은 부석사, 해인사, 화엄사이다. 


성상융회(性相融會)를 꿈꾸는 균여

신라 의상화엄의 전통이 고려에 이어지는데 균여는 화엄의 성상융회사상을

바탕으로 교학을 융합하는 한편 고려 건국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

  균여(均如, 923~973)는 화엄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기고 있다. 균여는

향가문학에도 공헌했는데, 화엄교학의 대중화를 위해 <화엄경>의 보현

행원을 바탕으로 <보현십원가>11수를 지었다. 균여의 화엄사상의 특징은

성상융회이다. 이는 광종의 개혁사상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천태사상


구원실성의 법신불

인도 영축산(靈鷲山)의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붓다는 일승(一乘)의 법과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영원불(永遠佛)을 가르쳤다.

  <법화경(法華經)>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약칭이며 범어로는

사다르마 푼다리카 수트라(Saddharma-pundarika-sutra)이다.

<묘법연화경>이란 제목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경의 제목이고 축법호는

<정법화경(正法華經)>으로 번역했다.

이는 범어 제목 사다르마(saddharma)를 축법호는 ‘정법’으로, 구마라집은 ‘묘법’으로

번역한 것이다. 인도 대승경전의 편찬사에서 제1기에

속하는 <법화경>은 적어도 150년경에는 완전한 경전이 존재했다고 보인다.

  현존하는 한역 <법화경>은 천태지의(天台智顗)에 의해 <제바달다품>이

<견보탑품> 다음에 첨가되어 현재는 28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법화경>의 28품

가운데 제2<방편품>에서 말한 회삼귀일(會三歸一)과 제16<여래수량품>에서

말하는 구원성불은 <법화경>의 기본사상이다.

  천태지의는 <법화경> 28품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앞부분을 적문(迹門)이라고

하고 뒷부분을 본문(本門)이라고 하였다. 적문에서는 <방편품>을 중심으로 석존이

개삼현일(開三顯一)에 의해 일승을 밝히고 이 땅에서 성불할 수 있는 길을 보이는

부분이다. 본문은 <여래수량품>을 중심으로 이 땅에 오신 석존을 초월한 구원실성

(久遠實成)의 본불을 밝히는 부분이다.

  <법화경>의 근본사상은 일불승(一佛乘)에 있다. 즉 일승만이 진실이라는 의미이다.

<방편품>에서 석존이 중생들에게 불지견(佛知見)을 나타내 보이고 깨닫게 하기 위해서

[開示悟入개시오입] 사바세계에 오셨다고 한다. 이 일승사상을 주창한

이유는 초기 대승불교에서 일승을 알지 못하고 삼승(三乘)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경향이 있어 삼승은 방편이고 일승만이 진실이라고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삼승이란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을 말한다. 이들 삼승은

제각기 다른 근기를 가져 수행을 달리하나 결국은 불승을 향해 수행하고 있는

점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법화경>의 중국적 이해

일승사상의 <법화경>은 중국인에 의해 최고의 경전으로 칭송되었으며

법화삼대부가 완성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삼제(三諦)와 일념삼천(一念三千)의 사상이 체계화되었다.

  중국의 천태사상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법화경>과 <대지도론>에

의거해 천태지의가 체계화한 사상이다. 천태종과 천태대사라는 호칭은

모두 그가 천태산에 오래 주석한 데서 생긴 이름이다.

  교상판석(敎相判釋)은 불교경전을 붓다의 일대기에 적용시켜 어떤

대승경전이 가장 뛰어난 가르침인가하는 우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줄여서 교판(敎判)이라고도 한다. 요점은 공사상을 말한 <반야경>을

근본으로 <화엄경>, <법화경>, <열반경>을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교상판석이 성행한 시기는 5~6세기로 남북조시대

이며 천태지의의 <법화현의(法華玄義)>에 소개되어 있는 ‘남삼북칠

(南三北七)’의 10사의 교판이 대표적이다. 남삼북칠의 교판은 대체로

<화엄경>을 맨 먼저 놓고 <열반경>을 마지막에, <법화경>을 중간에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천태지의는 종합통일교로서 <법화경>을

최고의 위치에 놓고 교판을 수립했다. 천태의 오시팔교(五時八敎)의

교판은 붓다가 말한 설법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경전을 그곳에 적용시킨

것이다. 천태의 오시는 화엄시, 아함시, 방등시, 반야시, 법화열반시이다. 

  천태는 불교의 사상과 경론을 팔교로 나누는데, 돈(頓), 점(漸), 비밀

(秘密), 부정(不定)의 4교는 설법의 방법과 형식에 따른 분류로 화의사교

(化儀四敎)라고 하고, 장(藏), 통(通). 별(別). 원(圓)의 4교는 설법의 내용에

따른 분류로 화법사교(化法四敎)라고 한다. 장교란 소승불교를 말하고,

통교란 대승의 일반적 교리를 말하고, 별교란 보살을 대상으로 한 가르침을

말하고, 원교란 원융한 가르침으로 <법화경>을 말한다. 천태지의는 화의

사교와 화법사교의 팔교를 붓다가 말한 순서에 따라 오시로 배열해 오시

팔교의 교판을 완성시켜 <법화경>을 최후에 배열하고 있다.

  천태사상의 특징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삼제와 일념삼천이다. 삼제(三諦)

사상은 중국의 천태교학의 공사상이 인도의 공사상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사상이다. 용수의 <중론> 제24 <관사제품>에 나오는 세속제와 승의제의

이제(二諦)를 천태에서는 공(空), 가(假), 중(中)의 삼제사상으로 전개한다는

것이다. 이 삼제사상은 결국 이상(理想)인 공과 현실의 가를 지양함으로써

중도제일의(中道第一義)를 세우는 것이다.

  한편 천태의 세계관인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은 절대 보편적인 진리인

일승묘법을 구체적인 현실에서 나타내는 것이다. 일념삼천이란 일념에

삼천의 세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법화경>의 <방편품>에

의거한 내용으로 모든 사물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내는 십여시(十如是,

相 性 體 力 作 因 緣 果 報 本末究竟)와 모든 존재를 가치적 기준에서 10개의 세계로

배열하고 하나하나에 다른 10개의 세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십계호구(十界互具)

와 연결되어 있다. 삼천세계를 살펴보면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하늘,

성문, 연각, 보살, 부처 등의 열 가지 세계 하나하나가 이 십계에 다른 세계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10*10=100이고 이 100에 10개 존재의 특성인

십여시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100*10=1000이다. 이것에 세 가지의 세간인

중생세계(衆生世界), 오음세계(五陰世界), 국토세계(國土世界)의 세 종류를

곱하면 3000이 된다. 따라서 일념에 이 삼천세계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일념삼천의 천태 세계관이 천태의 인간관인 성구설(性具說)에

영향을 주어 부처의 세계에서도 악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옥에서도

부처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천태의 성악설(性惡說)을 탄생시켰다.

천태사상을 뒷받침해 주는 문헌으로는 <법화경>과 그 주석서인 법화삼대부가

있다. 법화삼대부는 <법화문구(法華文句)>, <법화현의(法華玄義)>,<마하지관

(摩訶止觀)>이고, 천태지의의 만년의 저술들로 제자 장안관정(章安灌頂, 561~

623)이 필기하여 정리한 것이다. <법화문구>는 <법화경>을 한 문장 한 문장

해석한 주해서이고, <법화현의>는 <법화경>과 천태교학의 체계적 철학서이며,

<마하지관>은 수행과 실천의 도를 밝힌 것이다.

 

천태사상의 중흥가 담연

담연이 천태지의 이후 침체된 천태교학을 부흥시켜 당대에 천태종을 개창했다.

그는 처음으로 천태교학에 화엄사상을 도입해 화엄종과 선종에 대응했다.

  형계담연(荊溪湛然, 711~782)은 남동일대에 천태교학을 널리 알리고

장안과 낙양을 중심으로 활약하는 화엄, 선, 유식 등에 대응하여 법화삼대부에

주석을 만들고 제자를 양성하다가 72세에 입멸했다.

형계담연은 천태교학을 천태종으로 성립시킨 인물이다. 형계의 천태사상에서 주목할

점은 천태교학에 <대승기신론>의 사상을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대승기신론>의 사상을 흡수하여 화엄종을 반박하고자 한 의도는 궁극적

으로 화엄종에서 말한 무정(無情, 무생물)에 불성이 없다는 것으로, 이는

화엄종에서 말한 성기(性起)의 性은 심성(心性)일 뿐, 법성(法性)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담연이 화엄사상을 흡수하여 천태교학을 발전시켰으나 천태가 점점 화엄화되어 가는 경향을

일으켜 후에 산가파와 산외파의 논쟁을 만들었다. 


천태사상의 복귀, 사명지례

담연이 화엄사상을 천태종에 흡수시킨 이래 천태학이 점점 화엄화되고 사명지례는

천태사상의 복귀를 주장하나 화엄화된 천태사상을 선호하는 산외파와 논쟁이 벌어졌다.

  사명지례(四明智禮, 960~1028)는 20세에 고려의 승려 의통(義通, 927~

988) 문하에서 천태학을 배우고 교관을 강설했다. 그는 여러 책을 저술

했는데, 그 의도는 산외파의 학설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지레는 담연 이후

천태사상이 점차 화엄화되어 가고 있음을 의식해 원시천태로의 복귀운동을

일으켰다. 이는 결과적으로 산가파와 산외파의 논쟁을 유발하게 되었다.

지례의 일파는 정통파임을 주장해 산가파(山家派)라고 하고 반대파를 산외파(山外派)라 했다.

논쟁은 산외파의 원청과 지례의 ‘일념’에 대한 해석 문제였다.

원청의 화엄교학에 영향을 받은 유심적인 일념에 관한 해석은 지례에 의해 부정되었다.

지례는 일념이란 본질적으로 일체의 세계를 갖춘 여러 법의 하나임과 동시에 일순간

일어나는 망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념에 일체의 세계를 갖추고 그것이 공이고 가이고 중이라는 천태지관의

본지에 어긋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법화사상의 전래

삼국에 전래된 <법화경>과 법화 천태사상은 원효에 의해 집대성 되었다.

  일본에서 활약한 고구려의 승려 혜자(慧慈)에 의해 <법화경>과

법화사상이 일본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파야(波若)는 천태지의의 관문을 증득한 최초의 고구려인이다.

백제에서 <법화경> 수행을 한 인물은 현광과 혜현(惠現, 569~627)이었다.

현광은 중국의 혜사선사에게서 인가를 받았다.

혜현은 일찍 출가하여 오로지 <법화경>을 독송했다고 한다.

  신라에서는 연광(緣光)을 시작으로 낭지, 연회, 원효 등이 <법화경>을 강의하고,

법응, 이응, 순영은 천태 선법을 전했다고 한다.

연광은 중국에 가서 천태지의의 제자가 되어 <법화경>을 의지해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원효는 <법화경>에 대한 많은 주석서를 남기고 있는데, 그의

<법화종요>는 <법화경>의 대의를 개론화한 저술이면서 원효의

법화사상을 나타내는 주요한 문헌이다. <법화종요>에서 나타난

원효의 법화사상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이는데, 첫째는 방편과

진실은 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과, 둘째는 <법화경>의

근본사상은 일승실상(一乘實相)이라는 점이다.


중국에 역수출된 고려의 천태사상

원효의 법화사상 이래 고려의 제관과 의통은 중국의 천태교학에

영향을 주었고,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천태종이 개창되었다.

  당말 ・오대의 전란으로 없어진 천태교적을 구하려고 오월왕

(吳越王)이 고려에 사신을 보내자, 광종은 제관(諦觀, ?~970)을

사신으로 해서 천태서적을 오월국에 전했다.

제관의 저술인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는 소책자이지만,동아시아 국가의 천태

교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천태사교의>는 방대하고 난해한 천태

교학체계의 정수를 담은 것으로서 당시의 쇠퇴해 가는 천태교학의 중흥에 공헌했다.

 제관이 중국에 있을 때 중국에서 활약한 고려의 승려로 의통(義通,927~988)이 있었다.

 그는 의적(義寂, 919~987)의 문하에서 일심삼관

(一心三觀)의 뜻을 깨닫고 원돈법(圓頓法)에 대한 신념을 굳혔다.

의통은 귀국 길에 오르려 했으나 만류에 부딪혀 고려에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법을 펼쳤다. 산가파를 대표하는 사명지례는 그의 제자이다.    

 의천(義天, 1055~1101)은 고려 문종왕의 넷째 왕자로 태어났고, 11세에 출가했다.

그는 불교의 제반 학문을 섭렵했는데, 천태교학에 관심이 많았다.

31세 때 송나라에 건너가 정원(淨源, 1011~1088)에게 천태학을 배우고 법등을 이어 받았다.

송나라에서 귀국 후 국청사를 창건하고 천태교관을 강의했으며, 천태종을 개창하기 위해

국가시험으로 천태종 승려를 발탁하여 인재를 양성했다.

그의 주요 저술로는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3권이 있다.

  의천은 교관겸수(敎觀兼修)의 천태관을 확립하였다.

의천의 교관겸수사상은 당시의 불교교단이 교종과 선종으로 나뉘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서 천태일승에 선교 양종을 흡수하여 화쟁사상을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의천은 화엄종의 삼관오교의 교관병수사상을 바탕으로 천태종의 회삼귀일사상을

흡수하여 교종과 선종을 병합한 학풍을 세우기 위해 천태종을 개창한 것이다.


천태종 백련결사를 연 요세

요세(了世, 1163~1245)는 고려 중기에 있었던 선종의 정혜결사에 자극을 받아

염불수행을 바탕으로 하는 천태종 백련결사를 펼쳤다.

  요세의 백련결사는 1232년 만덕산에서 보현도량을 개설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제자인 천인과 천책 등과함께 법화삼매를 수행했다.

요세가 개창한 보현도량의 수행방법은 법화참법에 토대를 두고 아미타정토에

태어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어서 1236년에 백련결사(白蓮結社)를 결성했다.

이 백련결사는 사명지례의 정토염불결사를 본받은 것이다.

이 결사는 고려의 모든 계층이 동참한 민중불교운동으로서 천태종은 실천불교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요세 이후 제자인 천인과 천책이 백련결사를 이끌고 나갔다. 

 

선사상


중국인의 인간 본성에 대한 자각

달마에 의해 전해진 대승선법인 여래선이 육조혜능 이후 마조 무렵에

중국 고유의 조사선으로 발전했다.

  선(禪)의 범어는 디야나(dhyana)이며, 마음을 통일하는 것, 마음을

특정한 것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역하면 정려(靜慮), 혹은 선정(禪定)이다.

인도에서의 선은 초현실적이고 신비의 색채를 띠고 있으나, 중국에 전래되어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중국의 선으로 탈바꿈했다.

  중국의 선사상의 발달은 세 단계로 구분된다. 첫째는 교학선(敎學禪)

이다. 달마의 선법 이전까지이며 대승과 수승의 경전에 의거한 수행법

이다. 둘째는 신회가 주장한 여래선(如來禪)이다. 달마의 선을 신회가

여래선이라고 규정한 데서 비롯되었다. 셋째는 혜능에서 발단하여

마조도일에서 완성된 조사선(祖師禪)이다. 마조는 혜능의 남종선의 법맥을

이은 한 사람으로 중국불교에서 선종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이 시기의

선은 인간 본성의 근본문제가 아니라 실천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마조의

평상심이 실천의 핵심이다.


대승선법인 여래선의 전래

달마 이전에는 주로 소승선법이 전해졌고 달마에 의해 대승선법인 여래

선이 소개되었다.

  중국에 최초로 전래된 선에 관한 경전은 후한 말 안세고가 번역한

<안반수의경>, <음지입경>, <선행법상경>, <대지도경>이다. 이것들은

소승불교의 선관에 관한 경전들이다. 대월지국에서 온 지루가참은

<도행반야경>, <반주삼매경> 등을 번역하였는데, 이는 모두 대승불교의

선사상을 소개한 것이다.

보리달마 이전의 중국의 선불교는 소승의 수식관(數息觀, 호흡에 집중하는

관법)과 대승경론의 선사상이 소개되었고 어떤 종파에 소속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6세기에 보리달마가 중국에 온 이후의 중국선은 그와 그의 제자들이 주도했다.

따라서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는 보리달마(菩提達磨 혹은 菩提達摩, ?~536)이다.

보리달마는 6세기 초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왔는데 양무제와 만나 문답을 했으나,

중국인이 아직 선을 받아들일 근기가 숙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소림사에 들어가

면벽 9년을 하였다.

혜가(慧可)는 면벽을 하고 있는 달마를 찾아가 법을 구했다.

달마의 선사상을 엿볼 수 있는 문헌으로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이 있다.

二入 理入이입 行入행입이고, 四行 네 가지 수행방법이다.

여기에서 入이란 깨달음 또는 진리를 의미한다. 行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말한다. 理入은 경전에 의거하여 불교의

가르침을 깨닫는 것을 의미하며, 行入이란 보원행(報寃行), 수연행

(隨緣行), 무소구행(無所求行), 칭법행(稱法行)의 四行을 말한다.

보원행은 어떠한 고통도 자신의 악업에 의한 것이라고 하여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다. 수연행은 고락과 득실이 모두 인연에 따르는

것이라 보고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무소구행은 아무것도

구하거나 원하지 않는 수행이다. 칭법행은 본래 청정한 진리에 부합하는

실천이다.    


<능가경>에 의한 여래심법의 전승

달마는 혜가에게 법을 전수할 때 4권 <능가경>과 함께 여래의 심법을 전했다.

초기 선종에서 <능가경>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달마의 제자들을 능가종이라 칭한다.

  중국 초기의 선종을 능가종(楞伽宗)이라고 부른다. 이는 중국불교학자인

호적(胡適, 1891~1962)이 붙인 이름이다. 능가종이란 구나발타라가 번역한

4권본 <능가경>에 의거하여 선법을 전수하는 달마와 혜가 계통을 말한다.

<능가경>을 의지해 수행하는 선승을 능가사(楞伽師)라고 부른다. 능가사들은

“부처님 말씀에서 마음을 제일로 삼는다[佛語心第一불어심제일]”라고 하여

마음을 중요시한다.

  대표적인 능가사에는 혜가, 승찬, 도신, 홍인이 있다. 이들에 관한 문헌으로

<전법보기(傳法寶紀)>와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 師資란 스승과 제자를 의미함)> 있다.

  능가사에 속하는 한 주류가 쌍봉산에서 대승선을 수행하는 수행단체를

이루었다. 쌍봉산에서 법을 펼친 것은 제4조 도신이지만 그의 제자 홍인이

동산의 유거사로 옮겨 선법을 선양함으로 인해 동산법문 또는 동산정문이라

부른다. 도신의 선법은 일행삼매(一行三昧)가 중심이다. 또한 도신은 수일불이

(守一不移, 하나를 지켜 옮겨가지 않으면 불성을 보아 삼매에 든다)를 말했다.

도신의 제자 홍인은 도신의 수일불이를 수진심(守眞心)으로 계승했다.

또한 도신의 일행삼매를 계승하여 좌선을 통한 일자관이나 일상관을 강조하였다.


신수와 혜능의 갈등

달마에서 제5조인 홍인까지는 한 스승에서 한 제자에게 법을 전수하고 그

증표로 가사와 발우를 전하였으나 홍인은 혜능과 신수에게 법을 전하여

선종이 북종선과 남종선으로 나뉘었다.

  홍인 이후 중국 선종은 신수(神秀, ?~706)의 북종선과 혜능(慧能, 638~713)의

남종선으로 나뉘었다. 홍인의 제자인 신수와 그 제자인 보적과 의복 등을 가리켜

북종이라고 한다. 북종이라는 칭호는 732년에 하택신회가 활대의 대운사에서

남북의 종지에 대해 논쟁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신수를 북종이라 하고 혜능을

남종이라 하여 보리달마의 정법은 남종이 이었다고 주장했다.

  신수는 안심과 방편문으로 제자를 가르치는 전통을 이어갔다. 그의 방편문은

대승경전에 입각해 가르침을 펴는 것으로 북종선은 대승불교의 선적 통합을

의도한 것이라는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신수는 제자들을 16자의 함축된 의미로

가르쳤다. “마음을 응집하여 선정에 들고, 마음을 머물러 청정함을 보고, 마음을

일으켜 밖을 보고, 마음을 안으로 섭하여 증득을 얻는다.”는 “응심입정(凝心入定)

주심간정(住心看淨) 기심외조(起心外照) 섭심내증(攝心內證)”이 그것이다.   

  남종선의 혜능은 30세에 홍인의 제자가 되어 선법을 수학했으며, 후에 홍인

으로부터 법을 받아 남쪽으로 내려왔다. 16년간 평민과 같은 생활을 하다가

후에 소주로 돌아와 소주(韶州) 조계보림사(曹溪寶林寺)에서 법을 펼쳤다. 소주

에서 자사(刺史) 위거(韋璩)의 요청으로 하루 동안 마하반야법을 설하여 무상계

(無相戒)를 전한 것을 제자 법해(法海)가 기록한 것이 <육조단경(六祖壇經)>이다.

  혜능의 선사상은 좌선수행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문답을 통해 깨닫는다는

새로운 방법이다. 즉 선문답을 통해 깨닫는 언하변오(言下便悟)의 돈오견성

(頓悟見性)과 번뇌와 지혜가 둘이 아닌 불이법(不二法)이다. 이는 수행을 통해

번뇌를 없애고 바른 성품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자성에는 진망(眞妄,

참과 거짓)이 없으므로 견성하여 바른 성품을 파악하면 번뇌도 없어진다는 사상이다.

 

남종선에서 중국적 선법이 창출

혜능의 남종선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되고 불립문자(不立文字)와

직지인심(直指人心)을 표방(標榜)하는 중국 조사선(祖師禪)이 탄생되었다.

  혜능의 문하에서 많은 제자들이 배출되었는데, 중요한 두 법맥이

있다. 하나는 남악회양(南岳懷讓, 677~744) -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0) -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 - 남전보원(南泉普願,

743~834)이고, 또 하나는 청원행사(靑原行思, ?~740) - 석두희천

(石頭希遷, 700~807) - 약산유엄(藥山惟儼, 751~834) - 천황도오

(天皇道悟, 748~807)이다.

  마조의 선사상을 홍주종(洪州宗)이라 하고 석두의 선사상을 석두종

이라 한다. 마조의 홍주종에서 백장회해의 제자인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와 황벽희운(黃檗希運)이 나왔다. 위산영우에서 위앙종이,

황벽희운에게서는 임제종이 성립되었다. 석두의 석두종에서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이 나와 오가가 출현하고 중국 선종의 전성기를 맞았다.

  중국 선종의 성립이란 바로 조사선(祖師禪)의 확립을 말한다.

조사선의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인물은 앙산혜적이다. 혜능 문하의 선을

조사선이라 부르는 이유는 조사선에는 조사서래의(祖師西來義) 즉 조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묻는 종지를 드러내고 또 단순히 조사가 행하는

선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조사선의 특징은 불립문자(不立文字, 문자에 의지하지 않음), 교외별전

(敎外別傳, 경전에 의지하지 않고 전함),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과 마음으로 전함),

직지인심(直指人心, 바로 사람의 마음을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룸)로 드러난다.

이 가운데 조사선이 중점을 두는 것은 직지인심이다.

선종의 종지는 마음이므로 조사선은 마음을 직시한다.

따라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마음을 직시하기 위한 선문답을 통해 종지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하는 것이 조사선의 특징이다.

즉 직지인심에 이미 불립문자와 교외별전이 포함되어 있으며, 직지인심으로 견성하여

성불하면 이심전심이 실현되는 것이다.


선원이 율원에서 독립

남종선의 마조와 그 제자 백장에 의해 선원이 율원에서 독립해 독자적인 도량을

형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선원청규의 제정, 선종계보의 완성, 조사어록의 편찬

등으로 선종이 성립되었다.

  중국 선종의 성립 요건을 요약해 보면 선문답을 통한 돈오선법의 수립, 선원의

독립, 선종계보의 완성, 어록의 편찬 등을 들 수 있다.

  첫째, 돈오법의 수립이다. 혜능에 의해 이미 수립된 언하변오와 돈오견성을

추구하는 돈오선은 마조에 이르러 보편화되었다.

  둘째, 선원의 독립이다. 선종은 처음에는 율원(律院)에 속해 있었으나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율원에서 독립하게 되었다. 마조의 제자인 백장회해 때 선원의

청규(淸規, 청정한 규칙)를 제정해 함께 수행하고 노동을 통해 자급자족하는 교단을

형성하였다.

  셋째, 선종계보의 완성이다. 801년에 저술된 <보림전(寶林傳)>은 선종의 전등설

(傳燈說)을 확립하고 있다. <보림전> 이후 <조당집(祖堂集)>과 <경덕전등록(景德

傳燈錄)>등 선종의 전등사서(傳燈史書)가 계속적으로 편찬되어 중국의 선이 인도의

정통불교를 이어받음을 드러내고 있다.

  넷째, 어록(語錄)의 편찬이다. 선원이 율원에서 독립되고 독자적인 법당을 건립하여

선사들이 상당설법(上堂說法)과 시중법문(示衆法門)이 가능해지면서 어록이 편찬될

수 있었다. 또한 언하변오라는 스승과 제자간의 선문답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종의 수행방법이 선의 어록을 탄생시켰다. 

 

남종선이 오가칠종(五家七宗)으로 분립

남종선에서 배출된 선승들은 각기 독특한 선풍으로 제자들을 교화했다.

이들은 당대(唐代)에서 송대(宋代)에 걸쳐 위앙종, 임제종,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 그리고 임제종에서 황룡파와 양기파가 분리되어 5가7종을 형성 했다.

  위앙종(潙仰宗)은 위산영우의 법을 이은 앙산혜적(仰山慧寂, 807~883)의

문하에서 형성된 종파이다. 위앙종의 선사상은 무위무사(無爲無事)를 근본

으로 한다. 감정의 나쁜 습관을 버리고 마음의 근본에 통달해 무위하면 무사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임제종(臨濟宗)은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에 의해서 개창된 선종이다.

임제의 선사상은 무위진인(無位眞人)이며 무의무사인(無依無事人)이다. 임제가

제자들을 대하는 시설방편으로 대표적인 것은 할(喝)과 방(棒)을 비롯해 삼구

(三句), 삼현(三玄), 삼요(三要) 등 다양하다. 임제종은 송대에 황룡파와 양기파로

분립해서 계속적인 발전을 해 왔다. 

  조동종(曹洞宗)은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와 그의 제자인 조산본적

(曹山本寂, 840~910)에 의해 성립되었다. 동산이나 조산은 논리적으로 자신들의

선사상을 전개했다. 그들의 중심사상은 오위설(五位說)과 무정설법(無情說法)이다.

  운문종(雲門宗)은 운문문언(雲門文偃, 862~947)이 개창한 종파이며 설봉의존이

선법을 이었다. 운문종의 선풍은 운문천자(雲門天子)라고 한다.

이는 제자를 가르칠 때 천자(天子)의 조칙(詔勅, 詔書라고도 하며, 임금의 선지(宣旨)를

널리 알릴 목적으로 적은 문서.) 같이 한 번에 만기가 결정되는 간결함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그의 선법을 일자관(一字關)이라고 하는데, 운문의 어록에 나타나는 석 자

혹은 두 자, 한 자로 대답하는 선문답에서 연유한다.

  법안종(法眼宗)은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에 의해 오가 중 가장 늦게 형성된

종파이다. 그의 선사상은 선교일치사상이다. 그의 이 사상은 화엄을 바탕으로 선을

받아들이고 있다. 즉 화엄의 이사원융울 바탕으로 조동종의 정편오위(正偏五位)와

임제의 빈주설(賓主說) 등을 인용하면서 삼계유심을 제창하는 사상이다.    

 

5가7종의 전통이 간화선과 묵조선으로 응집

임제선 계통의 대혜종고는 공안을 참구하는 간화선을 발전시켰다.

그는 고요히 앉아 관조하는 굉지의 선풍을 묵조선이라 부르고 죽은선법[死禪]이라고 비난했다.

  송대에 접어들어 선종의 획기적인 사건은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가

간화선(看話禪) 혹은 공안선(公案禪)을 체계화한 것이다.

대혜는 중국의 조사선을 공안선의 역사로 일변시켰다. 그의 간화선은

조사들의 깨달은 인연을 공안으로 해서 참구하는 수행법이다.

간화선 에서의 공안은 분별심을 버리게 하는 절대적인 방편이고 공안을 참구

하여 무분별하고 근원적인 본성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안이란 본성을 비추는 도구이다.

  대혜의 간화선은 무자(無字)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를 조주의 무자화두라고 한다.

이는 무자화두에 정신을 집중시켜 그것과의 씨름을 통하여 절대의 진실에 눈뜨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마음을 비워 화두 혹은 공안, 즉 무자화두 그 자체로 되어

버리는 것이 깨달음에의 관건(關鍵)이다.

  묵조선(黙照禪)이란 명칭은 묵조선을 수행하는 선사들이 부른 것이

아니라, 대혜가 가만히 앉아 묵묵히 말을 잊고 목석처럼 쉬어가게

하는 묵조선의 그릇됨을 공격하고 비판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간화선이 공안을 참구하여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적극적인 선풍이라면, 묵조선은

고요한 곳에서 깨달음을 얻으려는 소극적인 선풍이다.

  묵조선은 조동종의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의 선이다. 굉지가

지은 <묵조명(黙照銘)>에 묵조는 마땅히 ‘묵’과 ‘조’로 나누어 묵은 무분별

이고 조는 지(知)에 대한 자각이라고 한다. 이 둘이 서로 일여(一如)하게

되면 묵조선의 극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후세에는 간화와 묵조가 임제선과 조동선을 대표하게 되어 묵조선은

조동종에 속하고 간화선은 임제종에 속하게 되었다.


선종을 개혁하는 결사

부패한 선종을 바로잡기 위해 지눌은 수선사(修禪寺, 현 송광사)를 중심으로

정혜결사를 하여 간화선에 의한 정혜쌍수의 전통을 확립했다.

  지눌(知訥, 1158~1210)은 자신을 목우자(牧牛子)라고 불렀는데, 시호(諡號)

가 불일보조(佛日普照)라 그를 보조국사(普照國師)라고 부른다. 지눌은 1190년

팔공산 거조사(居祖寺)에서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을 만들고 정혜결사를 선포했다.

1200년에는 송광산 길상사(吉祥寺)로 옮겨[길상사는 수선사라고 고쳐 불렀고,

산과 절 이름도 송광산 길상사에서 조게산 송광사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1년 동안 대중을

거느리고 선 수행을 하며 <금강경>, <육조단경>, <화엄경> 등을 강론했다.

그의 주요한 저술로는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수심결(修心訣)>, <진심직설(眞心直說)>,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화엄경

절요(華嚴經節要)>,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등이

있다. 그의 제자 중 혜심(慧諶)이 지눌의 정혜결사를 계승하고 <선문염송(禪門

拈頌)>을 저술하여 정혜결사의 수행지침을 확립하였다.

  지눌의 정혜쌍수는 하택신회(荷澤神會, 685~760)와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의 돈오점수설(頓悟漸修說)을 바탕으로 이론을 체계화했다. 돈오는

고요한 참다운 마음을 깨달음이다. 그러나 돈오 후에 반드시 점수라는 종교적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이는 비록 돈오하였으나 여러 겁 동안 익혀온 습기(習氣)는

갑자기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눌의 선사상은 간화선을 기본으로 하여, 한국에 최초로 간화선을 소개했으며,

화두공안으로 깨달음을 얻어 가는 조사선의 선풍을 한국불교의 근본 선사상으로

확립시켰다. 

 

정토사상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한 극락왕생을 염원

<반주삼매경>을 시작으로 발단한 중국의 아미타신앙은 정토삼부경에

의지한 미타본원(彌陀本願)의 타력신앙으로 발전했다.

  정토교(淨土敎)는 사바세계(娑婆世界)인 예토(穢土, 더러운 땅)가 아닌

정토(淨土, 깨끗한 땅)에 왕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토사상은 원시경전의

생천사상(生天思想)에서 발단하여 대승불교의 왕생사상(往生思想)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아미타불의 정토에 관해서는 <반주삼매경>이나

<무량수경> 등에 나타나는데, 이들 경전은 초기대승에 속한다.

  정토사상을 말한 경전이 많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무량수경>, <아미타경>,

<관무량수경>을 정토삼부경이라고 부른다. 이 명칭은 일본 정토종의 개조인

호넨(法然, 1133~1212)이 처음 사용한 것이다.

  <무량수경(無量壽經)>의 범어본의 이름은 ‘극락의 장엄(極樂의 莊嚴,

Sukhavativyuha)’이고 위(魏)나라의 강승개(康僧鎧)가 <무량수경>이라고

한역했다. <무량수경>은 아미타불의 전신인 법장(法藏)비구가 중생구제의

서원을 세워 아미타불이 되는 과정과 그 결과 얻은 서방정토의 장엄과

중생들이 왕생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한 것이 요지이다.

  <아미타경(阿彌陀經)>은 극락세계의 묘사와 왕생방법이 이야기되어 있다.

극락은 10만억 불국토를 지난 곳에 있는, 괴로움이 없고 즐거움만 존재하는

칠보단장의 세계이다. 그곳에 왕생하기 위해서는 아미타불의 명호(名號, 이름)

를 1일이나 7일간 일심으로 외우면 임종시 아미타불의 영접을 받아 왕생한다고 한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은 석존이 마가다국 왕사성에서 위제희 부인 등을

위해 정토왕생을 이야기한 경이다. 부처님이 신통으로 시방세계(十方世界)의

정토를 보여주자 위제희 부인이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원하며

수행방법을 가르쳐 주기를 간청했다. 이에 왕생방법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세 가지 복을 짓는 삼복과 16가지 관법을 말해 주었다.

  중국의 정토사상은 세 가지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첫째는 여산(廬山)의 혜원(慧遠, 334~416)이 창시한 백련결사의 흐름이다.

둘째는 정토삼부경을 중심으로 담란(曇鸞, 476~642)을 시초로 도작(道綽,

562~645)을 거쳐 선도(善導, 613~681)에 이르러 대성하는 흐름이다.

셋째는 자민삼장(慈愍三藏) 혜일(慧日, 680~784)이 제창한 선 ・정토 ・계율을

병행해서 수행하는 흐름으로서, 중국 후대 여러 종파들의 사상이 융합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송대 이후의 정토사상을 주도하였다.

 

정토삼부경에서 정토교의 개념 발전

정토경전에는 보살의 본원, 극락왕생, 염불, 관상법 등의 개념을 통해

아미타불의 구제를 구체화했다.

  아미타불은 ‘무량한 수명을 가진 자[無量壽무량수]’라는 뜻의 아미타유스

(Amitayus)와 ‘무한한 광명을 가진 자[無量光무량광]’라는 뜻의 아미타바

(Amitabha)로 나타난다. 이것을 중국에서 모두 ‘아미타’라 번역해서 아미타불

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아미타불은 이미 성불한 지 10겁이 지났으며, 현재도

설법하고 있다고 한다.

  아미타불의 기원(起源)에 대해서는 조로아스터교 기원설, 인도 내부 기원설,

불교 내부 기원설 등이 있다. 하지만 대승불교의 불타관을 바탕으로 석가모니

수명의 영원성에 대한 관심과 부처의 광명의 결합에서 아미타불이 출현했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아미타불은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에 근거를 둔다.

  보살행의 목적으로 서원(誓願)을 세우는 것을 본원(本願)이라 한다.

본원이란 범어 푸르바-프라니다나(purva-pranidhana, 이전의 서원)의 번역으로

아미타불의 부처가 되기 이전, 즉 법장보살이었던 시절에 세운 서원을 말한다.

법장비구는 세자재왕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48가지 서원을

세웠다. 48가지 서원이 성취되어 법장비구가 아미타불이 될 때 48가지 서원의

내용을 갖춘 정토가 세워지므로, 서원을 세웠다는 것은 곧 극락정토의 설계도를

완성했음을 의미한다.

  아미타불의 본원이 성취되어 건립된 세계를 극락정토라 하며, 극락은 범어

수카바티(Sukhavati, 즐거움이 있는 곳)의 번역이다.

안락(安樂) 또는 안양(安養)이라고도 번역한다.

  극락에 왕생한다는 것은 ‘태어난다’는 의미이며 결국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토왕생의 실천방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염불(念佛)이다. 염불은 문자 그대로 부처님을 염(念)하는 것이다. 염불에는

부처님을 마음속에 간직하여 항상 떠올리거나 생각하는 억념(憶念)과 사념(思念)과

심념(心念)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염불이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는 칭명(稱名)과

동의어로 사용하게 된 것은 중국의 선도(善導)에 의해 보편화되었다.      

 

<반주삼매경>을 중심으로 한 정토사상

초기 중국불교의 정토사상은 여산혜원의 백련사 염불결사에 의해

확립되었으며, <반주삼매경>에 의지한 관상염불의 성향이 강하다.

  중국의 정토사상은 179년 후한・삼국시대에 지루가참(支婁迦讖)과

축불삭(竺佛朔)이 공동으로 <반주삼매경>을 번역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경에서는 극락장엄을 말하지는 않지만 전념(專念)하면 서방 아미

타불을 볼 수 있다고 하는 삼매견불(三昧見佛)을 말하고 있다.

  여산의 혜원(慧遠, 334~417)은 정토교의 염불삼매법을 널리 알린

중국 최초의 승려이다. 그는 동진시대 도안(道安, 312~385)의 제자로

그의 문하에서 반야공의 이치를 깨달았다. 384년경 강남의 여산(廬山)에

입산하여 동림사(東林寺)에 머무르면서 백련사라는 염불결사를 창립했다.

  혜원의 염불은 부처님의 상호를 바라보는 관상염불이 주된 것이지만,

명호를 외우는 염불 수행도 함께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담란, 도작, 선도에 의해 펼쳐지는 정토신앙

담란-도작-선도로 계승되는 정토사상은 정토삼부경을 근거로 전개되고

발전하여 미타본원의 구제사상과 칭명염불을 탄생시켰다.

  담란(曇鸞, 467~542)은 세친의 <정토론>의 주석서인 <왕생론주>를 지어

중국정토종의 제1조가 되었다. 담란의 정토사상은 타력본원론(他力本願力)과

오념문(五念門)과 업사성변(業事成辨)으로 요약할 수 있다.

  타력본원론은 아미타불의 본원에 의지하여 정토에 왕생하고 정토에서

보살행을 닦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상이다. 오념문은 타력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서 구하는 다섯 가지의 문이다. 제1예배문, 제2찬탄문,

제3작원문, 제4관찰문, 제5회향문이다. 한편 업사성변은 정토에 왕생하기

위해 염불이나 보리심을 닦을 때 그 사람의 수행이 어느 단계일 때 정토

왕생이 결정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는 십념상속(十念相續) 업사성변을

주장한다.

  도작(道綽, 562~645)은 담란의 사상을 계승했다. <관무량수경>을 주석한

그의 <안락집>은 담란의 <왕생론주>에 큰 영향을 받았다. 도작은 <관무량수

경>을 중시하여 염불이 말법시대에 맞는 수행법이라는 주장을 했다.

  선도(善導, 613~681)는 627년경에 도작을 만나 <관무량수경>의 강의를

듣고 생사를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법임을 깨달았다. 그는 아미타불

본원은 정토왕생의 힘이라 믿고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면 범부도 아미타불의

정토[報土보토]에 왕생한다고 말했다.

  선도의 정토사상의 특징은 정토왕생의 방법으로서 안심(安心)과 기행(起行)과

작업(作業)을 말하며, 정토문의 마음가짐과 수행법과 그 실천방법을 조직화하고

정토문의 이론과 실천방법을 체계화한 것이다.      

 

자민삼장 계통의 융합적 정토신앙

정토사상이 천태와 선과 융합을 한 선정(禪淨)일치사상이 자민에 의해

시작되고 계속해서 송나라 정토사상의 주요 흐름이 되었다.

  자민혜일(慈愍慧日, 680~748)은 23세 때 해로로 인도에 건너가 13년간

머물면서 불교 유적지를 순례하고 학자들을 방문하여 범본을 구하였다.

그는 선과 염불의 병수(幷修), 소위 선정쌍수(禪淨雙修)를 주장했다.

자민은 염불이든 독경이든 일체의 정토행위가 실은 ‘禪’이라 말하고

선정일치(禪淨一致)를 말한다.

  자민의 사상은 천태종의 비석(飛錫, 741~778년경)이 지은 <염불삼매

보왕론>에 이어졌는데, 그는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통해

염하는 것이 ‘무상심묘(無上深妙)한 선문(禪門)‘이라 말했다. 그 이후

당나라 말기에 선종의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는 <종경록(宗鏡錄)>을

저술하고 선정쌍수를 역설했다. 이러한 경향은 이후 널리 일반화되었다.

명대의 대표적인 정토사상가 주굉(袾宏, 1525~1615)의 선정일치 사상이나

지욱(智旭, 1599~1655)의 선교율(禪敎律)을 염불에 통일하려는 사상에서

나타났다. 정토는 다른 여러 종파와 결합하여 염불은 쌍수(雙修)의 하나로

정착했으며, 선종의 염불 병수(幷修)는 가장 현저한 모습이다. 


<무량수경>에 입각한 정토사상

한국의 정토신앙은 <무량수경>의 정토사상이 근거가 되어 발전하여 일찍

부터 천태와 선과의 융합 속에서 선정쌍수의 염불수행론적 성격이 강하다.

  중국의 정토사상이 <관무량수경>을 중심으로 발달되었다고 한다면,

신라의 정토사상은 <무량수경>을 중심으로 발달 형성된 점이 특징이다.

중국 정토교학과 신앙을 정립한 도작과 선도류의 <관무량수경> 중심의

정토사상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고려시대의 정토교학은 독립적인 체계를 확립한 것이 아니라 선종과

천태종 그리고 밀교에 융합된 형태로 계승되었다. 선종과 천태종에

있어서의 정토교학의 차이가 뚜렷하다. 대체로 선종에서는 칭명염불을

부정하고 마음을 떠나 정토를 구하지 말 것을 주장한다. 즉 유심정토

(唯心淨土)를 말하고 있다.

  천태종의 정토사상은 요세(了世), 천인(天因), 운묵(雲黙)이 중요하다.

요세는 만덕사에서 백련결사를 통해 천태종 부흥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백련결사운동의 사상과 신앙체계를 법화삼매(法華三昧), 구생정토

(求生淨土), 천태삼매참의(天台三昧懺儀)로 세워, 천태사상과 정토사상을

융합시켰다.  천인은 요세의 제자로서 백련결사의 상수(上首)를 물려 받은

인물이다. 운묵은 당시를 말법시대로 규정하고, 말법시대를 구제하기 위한

이념을 정토에서 찾았다.

  조선시대에는 불교의 탄압으로 말미암아 산승가풍(山僧家風)이 확립되고

휴정(서산대사) 이래로, 경전을 공부하고, 선을 수행하고, 염불에 열중하는,

간경 참선 염불 삼문수업(看經參禪念佛三門修業)의 전통이 존속되었다.

  기화(己和, 1376~1433)는 무학의 제자로서 염불향사(念佛香寺, 염불결사)를

결성하여 아미타불울 관하고 칭명에 열중하였다고 한다. 휴정은 염불은 칭명

염불이 아니라 심념(心念)이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마음으로 하는 염불은

십념(十念)만으로 아미타불의 원력을 입어 왕생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선과 정토의 융합을 꾀하여 참선과 염불이 둘이 아님을 강조하는 선정일여

(禪淨一如)의 사상을 펼쳤다.   

 

출처 : [하루밤에 읽는 불교 / 소운스님] 중에서

출처 : 경담 비망록 (鏡潭 秘望錄)
글쓴이 : 鏡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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