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인욕
천자가 참으면 나라에 해가 없을 것이요,
제후가 참으면 나라가 커나갈 것이요,
관리가 참으면 그 지위가 높아질 것이요,
형제가 참으면 집이 부귀하게 될 것이요,
부부끼리 참으면 일생을 해로할 것이요,
벗끼리 참으면 의리가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요,
자신이 참으면 화해(禍害)가 없으리라.
명심보감
마음이란 정원에 인내라는 나무를 심자.
그 뿌리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오스틴
부처님 말씀
선남자야,
인(忍)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세인(世忍)이요,
둘은 출세인(出世忍)이니라.
능히 기갈과 한열과 고락을 참는 것을 세인이라고 하며,
능히 계(戒)·시(施)· 문(聞)· 지혜(智慧)를 인내하여 믿고,
소견을 바르게 하여 잘못이 없으며,
불법승을 믿고,
꾸짖음· 구타· 악담· 흉사· 탐진치 등을 능히 다 참고,
참기 어려운 것·
베풀기 어려운 것·
짓기 어려운 것을 참는 것을 출세인이라고 하느니라.
찬제바라밀품
만일
인욕을 닦고자 한다면 응당 먼저 교만심· 진심· 치심을 파하고,
아(我)와 아소(我所)의 상(相)과 종성(種姓)의 항상한 상을 보지 않을지니라.
만약 사람이 능히 이러한 관(觀)을 한다면 마땅히 알지니,
이 사람은 능히 인욕을 닦을 것이며,
이와 같이 닦고 나면 마음에 기쁨을 얻으리라.
찬제바라밀품
인욕에 잘 머무르면 제일의 장엄이 되나니
이것은 가장 뛰어난 재물이어서
세간의 보배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라.
제법집요경 인욕품
항상 자기 몸 제어하기를 달리는 말 붙잡듯 하고,
스스로 자기를 잘 단속하여
괴로움의 근본 끊기를 생각하라.
출요경 화품
비구들이여,
부디 세간을 생각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세간 생각은 이치의 요약이 아니요,
법의 요약이 아니며,
범행의 요약이 아니요,
지혜도 아니며
깨달음도 아니어서
열반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잡아함 사유경
다툼으로써
다툼을 그치려 하면
필경 그치지 못한다.
오직 참아야
능히 다툼을 그치느니라.
중아함경
몸을 절제하고
말을 삼가고,
그 마음을 거두고,
화내는 마음을 버려야 하나니,
도를 행함에는 인욕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법구경
참는 미덕에는
지계· 고행도 미치지 못한다.
능히 참음을 행하는 자는
이름이여 대인니라 하느니라.
유교경
만일
나쁘게 꾸짖는 말을
기쁘게 참아 받아서
감로를 마시는 것과 같이 하지 못하는 자는
도에 들어갈 지혜인이라고 이름하지 못한다.
유교경
분에(忿恚)는
능히 백천 대겁에 모은바 선근을 훼손한다.
그러므로
인욕의 갑옷을 입고 견고한 힘으로써
분에(忿恚)의 군사를 깨뜨리라.
대보적경
만일
다른 이가 짐짓 와서 성을 낼지라도
보살은 그때에 성낸 마음으로써 대하지 않는다.
또는
다른 사람이 와서 때리고 혹은 상처를 낸다 할지라도
다 대항하지 않는다.
세간의 중생들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 서로 위반하고 치성한 성을 내고 서로 속이는데,
우리 대승의 법은
중생으로 하여금 서로 위반함을 끊게 하고 참는 힘이 더욱 강하여
모든 중생의 혜심(慧心)을 원만하게 한다.
해의보살소문경
인욕은 원한을 이기며,
지성(至誠)은 속임수를 이긴다.
출요경
여래의 대자비의 방에 들어가,
일체공(一切空)의 자리에 앉아,
여래의 유화(柔和) 인욕의 옷을 입고서
사람들을 위해 법을 설한다.
법화경
인욕의 시험
슈라바스티에 매우 유순하고 정숙하기로 소문난 장자의 부인이 있었다.
칼리라는 여종은 그 부인이 참으로 온화하고 유순한지,
아니면 속에 품은 사나움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는 것인지 시험하고자 했다.
그래서 하루는 해가 떠오르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더니
부인은 ‘칼리야, 어째서 늦잠을 자느냐’고 꾸짖었다.
그 이튿날은 더욱 늦어 반나절이 지나서야 일어났다.
부인은 ‘나쁜 종년 칼리야, 왜 잠만 자는 거냐’고 크게 성내었다.
삼일째는 한낮이 지나 일어났다.
그러자 부인은 ‘이 나쁜 종년아’하고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
그 뒤로 부인은 매우 난폭하고 사납다고 소문이 나게 되었다.
평시에는 착하고 얌전한 듯했지만,
어떤 세속적인 욕정이나 모욕에 부딛쳐
나쁜 성질과 습성이 드러난 부인은
좋던 평판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아함경
그 신하에 그 임금
숙종 때 당하관이었던 이관명은 왕의 명을 받고 영남지방을 사찰하러 나갔다.
그가 돌아오자 숙종은 ‘영남지방에는 민폐가 없던가?’하고 물었다.
‘통영 관할하의 섬 하나가 대궐의 모 후궁마마 소유로 되어 있는데
아뢰옵기 황송하옵게도 수탈이 너무 심해 백성들의 살림이 말이 아니었나이다.’
이관명은 솔직히 후궁이 섬을 소유하고 있는 것의 부당성을 아뢰던 것이었다.
그러자 숙종은 신하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지라
‘내가 일국의 임금으로서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준 것이 그토록 잘못이란 말이냐’하며
책상을 내리쳤다.
‘상감마마께서 그리 탓하시오면 소신 황공함을 이기지 못해 물러나겠나이다.’
이관명을 사의를 표했다.
‘그만 둘테면 그만 두어라.’ 하면서
왕은 승지에게 전교를 쓰라 하였다.
그런데
‘이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한다.’하는 것이었다.
신하들이 의외의 승진에 놀라자
다시
‘홍문제학(弘文提學)을 제수하라.’하였다.
그리고 다시
‘홍문제학 이관명에게 호조판서를 제수한다.’고 하였다.
이어 숙종은
‘경의 충간(忠諫)으로 내 잘못을 깨달았소.
화를 내어 그대를 쫓아 보낸들 내 잘못이 없어지겠소.’하였다.
그러자 신하들은 왕의 성군됨을 하나같이 칭송했다.
라훌라의 밀행(密行)
부처님의 아드님 라훌라는 아버지를 따라 출가하였다.
언젠가 그는 설법을 나갔다가 박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
어떤 이는 돌을 던지고 혹은 죽이려는 사람까지 있었다.
라훌라는 부처님께 돌아와서 다시는 그 지역으로 설법을 가지 않겠노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다른 지방에서도 박해하면 어찌 하겠느냐?’
‘또 다은 곳으로 가지요.’
‘그곳에서도 박해한다면?’
그때 라훌라는 부처님의 뜻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인욕행의 제일인자가 되었다.
백은선사의 인욕
옛날 어떤 마을에서 처녀가 애기를 배고 말았다.
부모는 놀라 딸을 다그쳤다.
‘어느 놈의 자식이냐?’
딸은 궁지에 몰려 엉뚱한 이름을 대고 말았다.
‘동네 윗 절의 백은스님이예요.’
놀랍기 이를 데 없는 소리였지만
덕이 높은 스님이 그랬다는지라 부모는 할 수 없이 스님을 찾아갔다.
‘미거한 딸을 돌보아 주시어 혈육을 잉태하게 되었습니다.’하는데,
스님은 담담히 ‘아, 그래요’할 뿐이었다.
마침내 딸이 아들을 낳아 부모가 그 사실을 알려도
‘아 그래요?’할 뿐 아이를 안아보고 곧바로 올라가 버리는 것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니 괴로워진 딸은 모든 사실을 고백하였다.
진실이 밝혀져 부모님이 사과하러 찾아가니
역시 ‘아 그래요?’하고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세계적 종교 이슬람교를 창시한 마호메드의 말에 ‘인내는 만족의 열쇠’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의 옛 속담에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눈먼 사람 3년이면 시집살이 다 끝난다.’고 하였습니다.
한 세대 전만 하여도 여성의 지위란 보잘 것 없이 초라하였습니다.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겨우 이웃집이나 친척간끼리 단조로운 인간관계에서 살다가
가풍을 달리하는 시집살이를 하는 것은 인생의 일대 전화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성은 물론 남성도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하겠습니다.
핵가족제도가 널리 보급되어진 상태에서 성장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칫 이기적이 되기 쉽습니다.
또, 뜻대로 잘 안되는 일에는 불평과 불만을 품거나
쉽게 신경질과 화를 잘 내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참을성이 없는 듯이 보이는 것은
현대인만이 더 한 것은 아닐 듯 싶습니다.
공자의 말씀을 모은 [논어]에도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참을성은 인간이 지녀야 할 덕목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불교에서는
무엇에 욕심을 잘 내어 괴로워하는 이를 위해서는
보시라는 베풀음의 덕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동시에,
성화를 잘 부려 스스로와 주위를 괴롭히는 이를 위해서는
인욕이란 참을성의 덕행을 일러 가르쳐서
마음의 평안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불평도 씨앗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 형제를 떠나서
일심으로 깨달음의 길을 향하는
부처님의 출가제자들이 입는 법의를 ‘인욕의’라고도 하는데,
그 출가승의 큰 재산이라면 인욕하는 마음뿐이라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인욕’하면 박해를 견디는 마음만을 연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법구경]에서 가르치신 대로
인욕은 칭찬에 우쭐하지 않는 마음까지도 포함합니다.
다시 말해서 비방과 칭찬 사이에 동요됨이 없는
튼튼한 마음이 되도록 다지고 공부하는 바탕이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