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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윤회이야기 1] 무아인데 왜 윤회 하는가

무한대자유 2017. 4. 20. 21:39

 

[윤회이야기 1] 무아인데 왜 윤회 하는가

 

 

 

 무아는 불교의 중심적인 기본교리 중에 하나죠.(삼법인= 제법무아, 제행무상, 열반적정 or 일체개고) 즉 고정된 자아(아트만)가 없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인간이 죽고 다시 윤회하는 것도 부정됩니다.

 기본적으로는 자아를 인정하면 무아에 위배가 되고 인정하지 않으면 윤회가 제대로 설명이 안되고 어려운 문제죠. 그래서 등장한 교리중에 하나가 무아의 윤회입니다. 현재도 학계에서 논란에 있는 거구요. 실제로 <<오늘의 동양사상 제7>>에 보면 김진 교수와 한자경 교수의 논쟁이 있습니다.

 일단 무아의 윤회설을 간단히만 설명드릴게요. 물론 어려우면 굳이 이해할려고 안해도 됩니다. x1 이라는 생이 멸해서 x2가 생하는 구조에서 x1 x2는 假我(오온)는 존재하고 하나의 가아가 지은 업이 남긴 업력이 다음 가아를 형성하구요. 그 가아들 간의 연속성을 윤회라고 한다면 설명됩니다. 여기서 업력을 유식에서의 아뢰야식으로 봐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구요.

 한 마디로 인간이 업 때문에 윤회를 하게 되죠. 그러나 분명 고정적인 실체로서 나라는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죽어서 없어지니까요. 그러나 그 인간(가아)이 지은 업이 다음 생의 가아를 또 만든다는 거죠. 그렇다면 분명 무아 윤회가 설명됩니다.

 아마도 이런 차원에서 설명하셨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윤회론은 불교에서 윤리를 세우는 근간인데 이생에서 어떤 악업을 짓더라도 일단 세상을 하직하면 그뿐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옥에 간다는 것도 의미가 없어질 뿐더러 축생으로 태어난다 한들 그것은 이미 자신의 전생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존재가 되어 있음으로 전생에서의 악업에 대한 징벌적인 요소는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위에 분이 말한 부분 중에 위의 내용은 오해의 소지가 많군요. 일단 징벌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업에 의한 결과겠죠. 여기서 자신은 말 그대로 가아입니다본래 불교는 지금 나라는 실체를 가아로 보니까요전생의 업력에 의한 후생의 결과는 원인과 결과가 성립되죠. 물론 실체의 측면에서는 전생도 후생도 모두 무아인 것은 변함이 없구요.

 그러나 그 가아가 짓는 업력이 윤회를 하게 되는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된다는 게 윤회입니다. 이러한 설명에 의하면 무아라고 해서 결코 윤회가 성립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무아윤회는 아직도 많은 논쟁이 있는 부분입니다. 서로간의 주장을 잘 들어 보구요. 그 논쟁이 일어나는 이유가 뭔지 핵심이 뭔지를 아는게 중요하지 어느 것은 짜깁기다 기본교리가 아니다라는 식의 주장은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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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의 문제는 사후의 문제가 됩니다. 무엇이라고 표현하든 확실하게 알수도 없거니와 딱  이렇다할 정답을 찾기도 힘든 점이죠.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도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는 부분이구요.  무아윤회설이 사후의 문제이긴하지만 단지 종교적인 부분만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논쟁의 주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무아 윤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아라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셔야 합니다. 나라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으면 윤회한다는 것은 그런대로 받아들일수는 있을지 몰라도 무아윤회설은 이해하실수 없습니다

윤회라는 것에 대한 관념은 불교만의 독특한 관념은 아닌것은 잘 아실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시의 지배적인 관념도 아니었습니다. 윤회하지 않는다는 단견(斷見)을 주장하는 학파와 사람들도 아주 많았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윤회라는 것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았지만 또 윤회의 형태에 대해서 다른 외도의 입장과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불교만의 윤회에 대한 입장을 무아윤회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무아윤회설이라는 단어는 새로 생겼을지는 몰라도 고전적인 불교에서의 윤회에 대한 입장을 무아유회설이라고 부르는 것뿐입니다.

우선 ''를 무엇으로 볼것인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불교에서 ''라고 하면 떠오르는 말이 '아트만' '오온' 두가지가 있습니다.

아트만은 불교 이전에 외도에서 주장하던 것으로 영원불멸하는 실체로서의 나를 이야기 합니다. 육체를 초월하는 본질적인 ''를 아트만이라고 하고 불교에서 이야기 하는 '무아'라는 말은 바로 이 '아트만'이 없다라는 말입니다이말은 다시 모든 실존성들에 대한 부정으로도 이어져서 ''으로 다시 표현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무아와 공이라는 뜻은 존재의 실존성을 부정하고 영원불멸의 실체가 존재한다라는 생각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즉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해서 존재하고 있는 연기법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죠.

하지만 윤회를 이야기 할때의 ''는 아트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윤회를 이야기 할때의 나는 오온과 관련이 된것이죠오온이란 색,,,,식을 말하는데 우리가 나 또는 존재라고 착각하는 대상을 일컫는 말입니다존재라는 것은  아트만 같은 영원불멸의 실존하는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오온(五蘊)이라는 다섯가지 집합체 같은 것에 대해서 분별을 내어서는  독립된 실체라고 구별을 하고 그것이 ''라고 규정을 해버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우리가 흔히 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라는 실체는 오온이라는 집합체라는 것이죠. 하지만 오온이라는 것도 본래 나는 아닙니다.

*오온

1) ( ; 형상,물질) - 보이거나 만질 수 있는 모든 대상을 뜻하는데좁게는 ""을 가리킵니다.

넓게는 '대상'을 뜻합니다. 물질

2) ( ; 느낌) - ,,,풍의 16가지 느낌을 뜻합니다대표적인 예를 들면 거칠거나 부드럽거나(), 굳거나 끈적하거나(), 따뜻하거나 차갑거나(), 지탱하거나 움직이거나() 하는 느낌을 뜻합니다.   

3) ( ; 생각) - 인식 혹은 표상하는 것입니다.

4) ( ; 의도 등) - 행의 어원은 범어 샹카라( sankhara )에서 나옵니다. 이 행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되어 사용되어지는데, "오온"에서의 행은 감각접촉, 의도, 주의, 집중, 의욕, 유익한() 심리현상들, 해로운(不善) 심리현상들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의 행은 심리현상들로 이해해야 합니다 ''을 보통 가장 많이 헷갈려 합니다.

5) () - 대상을 아는 것을 또는 규정.

오온이라는 규정에서 알수 있듯이 나라고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색,,,,식 의 다섯가지 요소가 결합되어져 있을때 가능한것이죠. 그런데 사람이 죽게 되면 이 다섯가지 요소중에 우선 물질적인 색이 사라질 것이구. 윤회를 해서 몸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몸이 이전생의 몸과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연기의 법칙에 따라 그 몸을 통해서 받는 수,,,식 또한 달라질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번생의 나와 다음 생의 나는 같을수가 없는 것이죠즉 윤회를 설명할때의 나는 '아트만'이 아니라 '오온'입니다

오온에서 오온으로의 윤회이면서 그것에 영원불멸의 아트만적 요소가 없기 때문에 무아윤회설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럼 윤회의 주체가 되는 것은 무엇이냐고 한다면 그것은 업이라는 것이죠유식학의 아뢰야식이나 무아윤회설에서나 마찬가지로 윤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업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뢰야식은 업력의 보존과 발현을 아뢰야식이 주관한다고 보는 것이고 무아윤회설은 이런 아뢰야식이라는 담당체를 따로 설정하지 않고 업력속에서의 윤회를 설명하고 있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겁니다.

+그리고 sswook53님의  비판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갈수가 없어서 몇자 적어보겠습니다.

실존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허무주의라는 말씀은 기독교인이시니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까지는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실존성이 있다라고 보는 것이 착각일뿐 본래 실존성이라는 것은 본래 존재하지 않습니다실존이 없으면 허무할것이라고 사람들이 착각을 할뿐인 것이죠앞서서 윤회를 설명할때도 이야기 했지만 단지 오온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떤 실존성이 존재한다고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또 무아 윤회사상르 모순되는 짜집기라고 하시면서 힌두교에서 가지고 있던 것을 불교에서 그대로 채용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없으면 현실세계에서 윤리와 도덕을 가르칠 근거가 소멸되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셨는데 불교에서 선과 악을 가르는 분명한 기준은 윤회를 통한 보상이 아닙니다선악의 기준이 되는 것은 공()성입니다불교에서 선과 악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을 나누는 것은 유신견(나의 몸이 있다. 내가 있다라는 생각)에서 일어나는 탐진치와 자만심에서 일어나는 온갖 이기적은 행위들을 악惡이라고 하고전체 공동체에 대한 이득과 피해를 선악의 기준으로 삼고 있지 다음생의 좋은 보상을 받기위한 행위를 선이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불교에서 윤회가 갖는 윤리와 도덕에 대한 역활은  미미 합니다. 그래서 불교인 자체에서도 윤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즉 윤회설은 단지 선악을 제시하기 위한 짜집기가 아니었다는 것이죠.

 윤회론은 불교에서 윤리를 세우는 근간인데 이생에서 어떤 악업을 짓더라도 일단 세상을 하직하면 그뿐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옥에 간다는 것도 의미가 없어질 뿐더러 축생으로 태어난다 한들 그것은 이미 자신의 전생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존재가 되어 있음으로 전생에서의 악업에 대한 징벌적인 요소는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nakumo님의 말씀처럼 윤회라는 것은 보상을 받거나 징벌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군요. 윤회는 단지 내가 쌓은 업에 의해서 그 흐름에 따라 방향성을 가지고 흘러가는 것입니다. 선한 원인에는 선한 결과가 악한 원인에는 악한 결과가 윤회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 현생과 내생에서도 똑같다는 것이 윤회사상의 핵심인 것이지 윤회해서 좋은 결과를 받기 위해서 선한 행위를 해야한다는 것이 아닙니다즉 윤회사상은 연기론의 확장인 것이지보상과 징벌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sswook53님이 무아윤회설을 모순된 짜집기라고 오해를 하고 오도하는 이유는 생과 사의 문제는 보상과 징벌이라는 기독교적인 사고관을 벗어나지 못하시기 때문에 이해가 안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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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scaf 님이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처님의 무아 사상은 불교의 특징이며 깨달은 분의 완벽한 깨침의 소리(이론)입니다. 아직 지혜가 성숙되지 못한 우리들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에 끄달려 각색을 하고 여러 말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우리는 몸과 마음(오온)으로 구성된 이몸을 태어날 때 부터 ''라고 하는 집착과 함께 태어났습니다. 아마 전생의 업식에서부터 이 몸과 마음을 나라고 집착하는 성향을 이 생에도 그대로 가져왔을 것입니다.

 

12연기에서 보면 전생의 마지막 사몰심이 무명상태이면 이 생의 최초의 식인 재생연결식(결생심)도 무명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그 혜안으로 본 무아 (실체 없음)를 우리들이 관념적으로라도  이해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매 순간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8정도 수행으로 , 현재에 마음이 각성된 상태로 오온을 알아차리면, 매 순간 새로운 조건(원인과 그에 따른 결과)에 의한 오온의 현상들이 생하고 소멸하는 것을 직접 인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 몸과 마음을,  내것이라고 할 수 없고 ,나라고 할 수 없고나의 자아가 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네! " 라고 탁 이해하는 순간이 잠깐이라도  있습니다그러나 이런 수행 과정  없이  문혜(聞慧)에 바탕을 두고 추리력(思慧)으로 이해하려 해서는  망상만 늘고 오히려 혼란 스럽지, 오온을  있는 그대로 체험한 수혜(修慧)가 될 수 없다는 아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비록 관념적 이지만 무아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윤회는 한 일생의 윤회(이생에서는 인간이지만 다음생에서는 축생이나 천인이  되는 경우)가 있고매 순간의 윤회가 있습니다매 순간을 조금 길게 보아 하루로 해봅시다

 

어제가 원인이 되어 오늘이 있고, 오늘이 원인이 되어 내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제 내가 먹은 마음으로 행한 행위가 원인이 되어 오늘 어떤 일이 생깁니다그럼 오늘 생긴 일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내일 그에 걸맞는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어제의 나는 사라지고 오늘의 나가 있고 또 오늘의 나는 사라지고 내일의 나가  현재에 있습니다그런데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같다고할 수 있나요?   우리의 생각들은 같다고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실재(, 담마)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보면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어제 어떤 행위를 한 나는 오늘도 그대로 존재합니까?    사실은 몸의 세포가 몇 만개는 죽고 새로운 세포가 생겼을 것이며, 어제 먹은 마음도 그대로 갖고 있지 않고 그사이 수없이 변덕이 죽 끓듯 마음도 변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찰나마다 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있는 그대로 본것입니다그래서 매일 같은 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어제의 나가 진짜 나일까요? 오늘의 나가 진짜  나일까요이미 변하고 다음 순간에 새로 생길 나가 진짜 나일까요결국 변하지 않고 나를 조정하는 실체(영혼, 자아, )나 오온은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매 순간 변하는(생멸하는) 오온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나의 변하지 않는 영원한 주체나 실체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내가 없다고 하면 우리는 즉시 이 몸과 마음이 없어지는 것처럼 두려워하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이몸과 마음은 없어지지 못합니다. 업력이 있는 동안은 생성소멸하면서 계속 흐를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뿌린 업의 에너지를 누가 소멸시킬 수 있습니까다만 열매로 매 순간 나타날 뿐입니다그것도 자기가 심은대로 거두면서 영원토록 삽니다마치 과일을 먹고 다시 씨앗을 뱉어서 다음 과일을 받을 원인을 매 순간 마다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몸과 마음은 바로 전 순간에 일으킨 업력에 영향을 받아  이 순간 새로운 몸과 마음이 생성됩니다전 순간이 원인이고 이 순간이 결과입니다. 다시 이 몸과 마음이 다음 몸과 마음을 일으키는 원인이되고  사라집니다

 

이렇게 매찰나 생성 소멸하는 오온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면 집착할 대상이 없어지므로 해탈과 자유의 가볍고 평온한 몸과 마음이 이어집니다그러므로 무아를 체험하면 훨씬 지혜롭게 삽니다. 집착할 것이 없으므로

 

우리가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게 됩니다이 아이는 엄마 아빠가 원인이 되어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바로 나(부모)입니까? 아닙니다나는 원인을 제공했을 뿐  그 결과물인 아이는 그냥 아이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부모와 전혀 상관 없습니까? 아닙니다부모의 유전자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전 순간의 나와 이 순간의 나는 마치 부모 자식처럼 다음 순간의 나를 전 순간의 나와 동일체라고 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단순하게 전 순간의 몸과 마음이 있었고, 그 몸과 마음은 사라지고 다시 이 순간의 몸과 마음만 있습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는 통찰력으로  불교의 무아를 이해하고,  매 순간을 선한 업을 지으면 다음 순간 선한 과보가 오고 그래서 다시 선한 업을지어 그다음 순간 선한 과보가 올 원인을 만들고 하는 것만이 몸과 마음을 가진  존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결론이 납니다.  (수처작주)

 

그런데 만일 이순간 쓴 과일을 먹는다해도 그때 쓴 과일의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다음 순간에 받는 과일은 쓰지 않습니다이미 나에게 도착한 열매는 쓰던지 달던지 다 받아들이고, 이순간에 새로 심는  씨앗을 뿌릴 때 깨어있으면 됩니다 이 순간에 짓는 업에 알아차림(사띠, sati)을 붙이면 됩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매 순간 찰나 생멸하는 존재로  무아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만일 무아가 아니어서 한번 쓴 열매를 거두고, 그것이 소멸하지 않고 계속 쓴 것만을 거두어야 한다면  매 순간 선하게 살 노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무아이기 때문에 과거와 단절하고 항상 현재를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것입니다이 순간에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미래는 지금심는 것이 원인이 될 것이므로  현재에만 깨어있어 불선업의 씨앗을 심지 않으면 됩니다과거 미래는 현재 실재하지 않습니다.

 

무아를 이해할 때 해탈 열반으로 가는 길이 보입니다

 

 

tibetbuddhism.pe.kr/

 

 

출처 :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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