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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려불화대전(國立中央博物館 高麗佛畵大展 ) Ⅰ

무한대자유 2016. 11. 3. 21:04

 

國立中央博物館 高麗佛畵大展 "700년 만의 邂逅"Ⅰ

 

세계 흩어진 고려불화 61점  700년만에 한자리에

수월관음도 아미타삼존도 등 한국불교미술의 백미 61점 전시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은 G20 정상회의와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이전 개관 5주년을 기념하여 “고려불화대전 - 700년 만의 해후”를 개최한다.  이 특별전은 10월 12일(화)부터 11월 21일(일)까지 6주 동안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며, 전시되는 유물의 총 수량은 108점이다. 일본 소재 고려불화 27점, 미국·유럽 소재 고려불화 15점, 국내 소재 고려불화 19점 등 고려불화 61점과 함께, 비교 감상을 위한 중국 및 일본 불화 20점, 고려불화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 전기 불화 5점, 고려시대 불상과 공예품이 22점 전시된다.

고려불화는 잘 알려져 있듯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예술품으로 손꼽힌다.  고려인의 높은 미적 수준을 드러내는 섬세하고 단아한 형태, 원색을 주조로 한 화려한 색채와 호화로운 금니, 흐르는 듯 유려하면서도 힘 있는 선묘 등 당시 동아시아에서 독보적인 미의 세계를 창조하였으며, 승화된 고려불교의 정신성과 고려인들의 숨결까지 함축하고 있어 고려시대의 문화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또한 이 특별전에는 고려불화 뿐만 아니라 동 시대인 중국의 남송~원대의 불화와 일본의 가마쿠라시대의 불화도 함께 출품되어 동아시아 불교미술 가운데 고려불화의 뛰어난 예술성을 폭넓은 시야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국내에 소장된 고려불화 외에 일본미국유럽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고려불화를 한 자리에 모음으로써 평소 한두 점 관람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고려불화 수십 점을 한눈에 비교하면서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는 것이다.

 

센소지(淺草寺) 소장 <수월관음도>를 비롯해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 소장 <지장보살도>, 오타카지(大高寺) 소장 <관경16관변상도> 등 출품작 상당수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특히 ‘물방울 관음’이라는 별칭을 가진 센소지 소장 <수월관음도>는 일본 현지에서도 공개하지 않아 일본 학자들조차 보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주요 출품 기관은 국내의 삼성미술관 Leeum, 일본의 동경국립박물관, 나라국립박물관, 규슈국립박물관을 비롯하여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보스턴미술관, 프랑스의 기메박물관, 독일의 베를린동아시아박물관과 쾰른동아시아박물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주박물관 등 총 44개 처에 달한다.

고려불화는 작품이 워낙 귀하기 때문에 한 곳에서 여러 점을 소장한 경우가 드물다. 총 44개 처에 달하는 국내외 소장처와 협의하는 과정에서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많은 고려불화가 일본에 소장되어 있어, 한국에 빌려주면 다시 돌려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소장자들을 찾아가 끈질기게 설득하고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정이었고 심지어 작품 운송을 코앞에 둔 시점까지 주저하거나 출품의사를 철회해 버리는 소장 기관도 있어 관계자들의 애를 태웠다.

 

한편 출품을 허락한 기관들은 ‘불화도 자기 고향에 한번은 가보고 싶을 것’이라는 말을 종종 하였는데, 이러한 이유로 인해 어렵게나마 국외 대여를 허락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뒤 어느 때인가 흩어져 소장된 고려불화들이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특별전에서 함께 선보이게 되었다.

 

‘700년 만의 해후’라는 특별전의 부제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처럼, 이번 전시는 고려불화들의 특별한 고향 나들이인 동시에, 우리 국민으로서도 평생 다시 만나기 어려운 반갑고 애틋한 만남의 시간이 될 것이다.

전시의 구성은 주제별로 구분되어 있다.

제1부 ‘깨달음의 존재, 부처’에서는 고려불화 중에서도 부처를 주존으로 그린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정토신앙의 성행을 반영하듯 아미타불을 그린 불화가 많다.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아미타삼존도>는 내영도來迎圖 형식, 즉 아미타불이 죽은 자를 극락으로 맞이하기 위해 다가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관음보살이 허리를 굽혀 극락왕생할 사람을 연꽃에 태우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제2부 ‘중생의 구제자, 보살’에서는 불교 신도들에게 친근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주제로 한 불화들을 전시하였다. 일본 센소지 소장 <수월관음도>는 은은한 녹색의 물방울 모양 광배 속에 서 있는 관음보살을 그렸는데, 관음보살의 자태는 늘씬하고 우아한 고려의 미인을 연상케 한다. 일본 단잔진자 소장 <수월관음도>에는 보타락가산의 암좌에 앉아 법을 구하러 온 선재동자를 맞이하는 관음보살의 엄숙하고 단아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3부 ‘수행자의 모습, 나한’에서는 고려 1235-6년에 그려진 <오백나한도> 연작을 선보인다. 현재 14점 정도 알려져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장 많은 7점을 소장하고 있어 전 작품을 전시하며, 미국, 일본 등에서 대여한 3점을 더하여 총 10점이 전시되므로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의 대부분을 볼 수 있는 셈이다.

제4부 ‘이웃 나라의 불보살’에서는 고려불화와 같은 시기에 그려진 중국과 일본의 불화들을 전시하여 당대 동아시아의 불교문화와 불교회화를 넓은 시야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1909년 코즐로프 탐험대가 하라호토에서 발굴한 12-13세기의 서하西夏 불화 3점은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품으로서,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고려불화 <아미타삼존도>와의 친연성을 통해 그 존재가 이미 잘 알려져 있었으나 실물을 보기는 어려웠다.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번이 최초이다.

에필로그 격인 ‘전통의 계승’에서는 고려불화의 전통이 조선시대에 어떻게 계승되었는지를 조선 전기 왕실에서 발원한 불화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문정왕후가 1565년 회암사 중창시 발원한 400점의 불화 중 일부인 <약사삼존도> 2점도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는 전세계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불화(국내소장 20-나한도 포함, 미국 및 유럽-10, 일본 130점) 중 약 40%에 해당하는 총 60여점 및 조선불화 및 일본불화, 그리고 기타 유물을 포함해 총 106점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총 44개 국내외 소장처와 2년여에 걸친 접촉, 협의를 통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고 한다.  

 

  

 

제 1부 깨달음의 존재 부처

 

 

 
고려시대는 왕실은 물론 일반 백성의 삶 속에까지도 불교가 깊이 뿌리내렸던 시기였기 때문에불화의 제작도 성행하였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벽화 형식의 불화도 많이 제작되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불화는 대부분 두루마리 형식이라고 한다.  회화 전시의 특성상 전시실 조명이 밝지  않습니다 

 

 

 

석가삼존, 16나한도/소장처 : 근진미술관 (일본)

시대 : 고려 / 크기 : 90.0×44.5 .  

 

 

 

 

 

아미타불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90.0 x 87.2cm.

 

그림 뒤에서 복장 유물이 발견된 일본 교토 쇼보지(正法寺) 소장 고려불화‘아미타독존도’. 일본 중요문화재. 

 

 

흔히 불상(佛像)을 만들어 봉안할 때 뱃속에 넣는 복장(腹藏) 유물이 고려불화 뒤쪽에 부착된 사례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이 28일 오전 10시 박물관 대강당에서 개최하는 '동아시아 불교회화와 고려불화'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박은경 동아대 교수는 "일본 교토 쇼보지(正法寺) 소장 '아미타독존도'의 1999년 수리보고서에 따르면 화면 뒤쪽의 배접지를 제거하자 아미타여래상의 가슴 부근에 붙어 있는 종잇조각이 발견됐고, 거기에는 지름 10.6㎝ 크기의 원형을 중심으로 외곽에 보협인다라니경(經)이 범어(梵語·산스크리트어)로 적혀 있었다"고 발표한다. 박 교수는 "복장물은 불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오장육부(五臟六腑)와 같은 것으로 이는 고려시대 불화가 불상처럼 예배의 대상으로 모셔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김정희 원광대 교수는 '고려불화의 발원 시주자'라는 논문에서 "고려불화의 발원 시주자는 왕실, 관인(官人), 승려, 향도 및 개인 등으로 다양하며, 특히 고려 전기의 문벌귀족을 대신해 후기에 부상한 권문세족(權門勢族)과 지방의 향도조직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밝힌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불화 160여점 중 명문(銘文)이 남아 있는 작품은 30여점이고, 그중 발원 시주자를 알 수 있는 작품은 20점 정도다. 김 교수는 "고려 후기의 기복불교적 성격이 불화를 통해 복을 빌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풍조를 낳았던 것"이라고 해석한다.

국내의 대표적 고려불화 전문가인 정우택 동국대 교수는 고려불화의 핵심인 표현기법과 도상(圖像)을 중심으로 고려불화의 독자성을 소개한다. 정 교수는 "고려불화의 채색이 붉은색·녹청색·군청색 등 모든 안료를 섞지 않고 원색을 고집한 이유는 금선(金線)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며 "고려불화에 있어 금(金)은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도구였다"고 강조한다.

 

 

 

 

 아미타팔대보살도(阿彌陀八大菩薩圖)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73.1x91.1cm, 

일본 조코지(淨敎寺) 소장  아미타여래가 여덟 보살을 거느리고 움직이는 듯하다.  

 

 

 

 

 

  

 

비로자나삼존도(독일 쾰른 동아시아 박물관 소장)

 

 고려 불화는 우리 미술의 백미로 손꼽히며 단아한 형태, 원색을 주조로 한 화려한 색채의 조화, 호화로운 금니의 사용, 물 흐르듯 유려하면서도 힘있는 선묘는 독보적인 미의 세계를 창조했던 고려인의 높은 품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그림은 비로자나삼존도(독일 쾰른 동아시아 박물관 소장)로 화염경의 주존, 비로자나불을 그린 그림이지요. 부처는 대좌 위에 앉아 양손을 모아 지권인을 취하고 있다. 비로자나삼존도로서는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불화라고 한다. 
 


  

 

아미타삼존도 고려 후기, 일본 네즈미술관 소장

 

아미타삼존도(고려 후기, 일본 네즈미술관 소장)를 볼 수 있다. 설법도 형식의 아미타 삼존도로 보통 이렇게 불화에서는 부처는 크게 보살은 작게 그립니다. 이는 옛 그림에서 중요한 인물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인물은 작게 그리는 기법을 따른 것입니다.

 

 이 그림은 아쉽게도 10월 12일부터 10월 31일까지 3주 밖에 전시되지 않아 얼른 전시회를 보러 가 볼 일입니다. 참고로, 이번 전시 중 이 작품을 비롯한 8개의 전시물은 3주에서 4주간의 짧은 전시만 허락을 받은 모양입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이 그림들은 관경변상도라는 것입니다. 이건 인도의 한 왕비가 괴로움이 없는 세계에 다시 태어나기를 부처에게 기원하자, 부처는 극락정토에 대한 법을 설하게 되고 극락정토로 가기 위한 16가지의 관상 내용을 그린 것을 관경십육관변상도라고 하네요. 이 그림은 일본 지온니에서 소장하고 있는 초기의 그림이라고 하며 중앙은 조선 초기의 그림입니다. 


 

 

 관경변상도 옆에 있는 그림은 일본 지온인 소장의 미륵하생경변상도.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후 미륵불이 세 번의 설법회를 열어 남은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하생경의 내용을 그린 것으로, 고려시대에 융성했던 미륵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륵불은 56억 7천만년이 지난 후 구원의 마지막 때 나타난다는 부처지요. 이 그림에서는 왕과 왕비도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구원을 바라는 염원을 나타내고 있기도 합니다. 화면 가운에 크게 그려진 미륵삼존을 중심으로 주위에 제석천, 범천, 십대제자, 십이신장을 나누어 배치한다고 하네요.

 

아미타팔대보살도 

 

아미타팔대보살도에서는 아미타불이 설법하며 8명의 보살이 보위하고 있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아미타불과 보살들의 신체에 금니를 칠하고 윤곽선을 따라 붉게 음영을 주고 있네요. 아미타불은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한다는 부처라고 합니다.

 

보통 8보살은 약사경에 나와있는 팔대보살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문수사리보살(문수보살의 원이름, 문수보살은 약칭임), 보현보살, 관세음보살(관음보살), 득대세지보살(대세지보살), 무진의보살, 보단화보살, 약왕보살, 약상보살, 미륵보살의 팔대보살을 많이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 신도들이 좋아하는 보살님들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금강장보살, 제장애보살, 지장보살, 미륵보살이라고 하네요.

 

 

이들 부처들이 입은 가운의 원색의 붉은 빛과 적절한 금의 사용은

7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생생함과 고급스러움을 잃지 않게 하는 비결이라고 합니다. 

 

 

 약사삼존도(전시장벽의 프린팅) 조선 1565년, 비단에 금, 54.2x29.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요한 박물관 전시관 안의 모습. 불화들의 보존을 위해 실내조명은 모두 100눅스 이하로 맞추었다고 하다   고려의 불화들은 비단 바탕 위에 광물질로 만든 안료를 사용하여 제작하는데 고려 불화에 주로 쓰인 적색, 녹색, 청색은 각각 주사, 석록, 석청이라는 광물성 안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제 2부 중생의 구제자 보살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전시 실물.

 

 

7백년 만의 해후라는 부제가 붙은 고려불화대전이 지난 12일 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도자기와 더불어 고려문화를 대표하는 불화는 우리 불교미술의 백미로 손꼽히고 있다. 단아한 모습과 화려한 색채의 조화, 물 흐르듯 유려하면서도 힘이 있는 선,호화로운 금니의 사용 등이 고려인의 높은 품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관계자는 설명하고 있다.

 

배영일 학예연구사(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는 이토록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고려불화는 당연히 전 세계적으로도 호평을 받고 있다고 했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불화는 전 세계에 걸쳐 약 1백60여 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 국내에는 20여 점, 유럽과 미국에 20여 점, 일본에 나머지 대부분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고려불화의 제작시기는 무신의 난 이후인 13세기 말에서 14세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아미타신앙이 크게 유행했던 만큼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하는 불화가 50여 점으로 가장 많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은 존재인 부처그림과 더불어 우리의 눈길을 끄는 그림은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주류를 이루는 보살그림이며 관음보살 중에서도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이 바로 수월관음도라는 것.중생의 구제자로 일컬어지는 보살그림을 중심으로 고려불화를 살펴보기로 한다.

 

  

수월관음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10.0*57.7cm  일본 단잔진자談山神社 소장

 

여러 점의 수월관음도 중에서 비교적 색깔이나 전체 그림이 잘 보존된 것으로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관음보살도 가운데 가장 많은 수월관음도는 관음보살이 바위에 걸터 앉아 화면의 왼쪽 아래를 응시하며, 주위에는 대나무와 정병이 있고, 발 아래에 선재동자가 법을 구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 가장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수월관음도는 선재동자가 법을 구하기 위해 관음보살을 방문하여 가르침을 받는다는 『화엄경』「입법계품」의 내용을 그린 것이다. 이 수월관음도는 여러 수월관음도 중에서도 화려한 금니와 고운 색채가 놀라울 정도로 잘 살아 있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손꼽힌다.


화면의 오른쪽 아래에는 금니로 우산을 쓴 사람, 맹수와 독사에 쫓기는 사람, 도적을 만난 사람, 목에 칼을 찬 사람, 병상에 누운 사람, 화염에 싸인 집 등 여러 가지 재난의 모습을 그렸다. 이는 재난을 만났을 때 관음보살을 부르기만 하여도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법화경』「관음보살보문품」의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물방울 관음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려불화대전-700년 만의 해후'(11월 21일까지)에는 내 평생에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포기하고 있던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사진>, 일명 물방울관음이 출품되어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일본에 고려불화가 많이 있다는 사실은 1967년 구마가이(熊谷宣夫)가 '조선불화징(朝鮮佛畵徵)'에서 그동안 막연히 송나라 불화라고 알려진 70여점이 고려와 조선 초기 불화라는 사실을 고증하고부터이지만 혜허(慧虛) 스님이 그린 이 수월관음도만은 일찍부터 알려진 고려불화 명작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었다.

1978년 야마토분카간(大和文華館)에서 열린 '고려불화 특별전'에 52점이 선보인 것은 한국미술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전시회에 물방울관음은 출품되지 않았다. 그리고 1981년 아사히신문사에서 발간한 '고려불화'라는 초호화판 화집에서도 물방울관음은 촬영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이번 특별전에서도 처음에는 센소지가 출품을 거부했다. 다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유물의 존재 여부만이라도 확인시켜 달라는 요청에 간신히 응했는데 이 불화를 꺼내 왔을 때 관장과 학예원이 작품에 큰절을 올리는 것을 보고 감복하여 마음을 바꾼 것이라고 한다.

물방울관음은 과연 천하의 명작이다. 법을 구하기 위하여 찾아온 선재동자(善財童子)를 수월관음이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는 그림으로 오른손엔 버들가지, 왼손엔 정병을 들고 서 있는 자세가 고아하기 그지없고 관음은 신비롭게도 물방울(혹은 버들잎)에 감싸여 있다.

 

본래 명작들은 사진 도판으로 익혀온 탓에 작품을 직접 보면 무덤덤하기 일쑤다. 그러나 이 물방울관음은 달랐다. 작품 앞에 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 숭고하고도 아름다워라 고려불화여!"라는 찬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싶어 다시 들어가 하염없이 바라보다 마지못해 박물관을 나왔다.

 

[출처] : 유홍준의 국보순례 / 조선일보

 

 

수월관음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42.0*61.5cm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일반적인 수월관음도가 바위에 걸터앉은 모습인 것과 달리, 이 수월관음도는 은은한 녹색의 물방울 모양 광배 안에 서 있는 자세로 표현되어 있어 ‘물방울 관음’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관음보살이 딛고 선 연화좌는 물에서 솟아나 있으며, 물결무늬는 잔잔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움직임을 보인다. 발치 앞에는 꽃묶음이 솟아올라 있고, 그 앞에는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향해 손을 모으고 있다. 


   한 손을 들어 버들가지를 늘어뜨린 관음보살의 자태는 매우 우아하고 늘씬하여, 고려 미인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화면 오른쪽에는 ‘해동 승려 혜허가 그렸다海東癡衲慧虛筆’는 명문이 남아 있다.


 

 

 버들가지를 든 보살의 소끝에서 부터 물위를 스치는 옷자락 끝까지 완만한  S자를 그리며 흐르는 선의 우아함과 보살의 가숨과 옷 위에 늘어진 장신구의 정교함과 섬세함 , 차분하게 가라앉은  색조의 품위, 투명한 천의의 기이한 광택을 먹음은 물방울 모양의 광배의 신비로움-- 화려하면서도 현란하지 않고  영묘한 그림이다.   요한하지도 수수한 것도 아닌 기품있는 귀인의 아름다움이라 하겠다.

 

  


  

 

도록에서 보다 자세히 들여다 본 사진들입니다. 은은한 녹색 물방울 모양의 광배 안에 한 손을 들어 버들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이 우아하고 늘씬한 이 관음 보살은 일명 '물방울 관음'이라고 불린답니다.  

 

일본에서조차 단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었던 수월관음도가 700년 만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고 한다 .

 한올 한올 망사위에 놓아진 수의 섬세함과 아름다움 역시 700년전의 것이라고는 믿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 수월관음도(부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42x61.5cm, 일본 센소지소장
 

  

일반적인 수월관음도가 바위에 걸터앉은 모습인 것과 달리, 이 수월관음도는 물방울 모양 광배(光背) 안에 서 있는 자세여서 '물방울 관음'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관음보살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물 위를 스치는 옷자락 끝까지 흐르는 선(線)의 아름다움, 차분하면서도 단계적인 농담(濃淡)으로 효과를 준 색채감이 환상미의 극치를 이룬다. 화면 오른쪽에는 '해동(海東) 승려 혜허(慧虛)가 그렸다'는 글씨가 남아있다. 

 

전시장 한복판, 감실처럼 조성된 어두운 공간에 그림 한 점에만 조명이 떨어진다. 온 세상 중생의 고난을 보살핀다는 자비(慈悲)의 관세음보살이 비단 화폭 속에서 고고한 자태로 빛나고 있다. 슬픈 듯 우수에 젖은 눈빛, 팔에 걸쳐진 채 발아래까지 내려오는 투명한 베일,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있는 가느다란 손가락…. 일본센소지(淺草寺) 소장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다.

 

 

수월관음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삼성미술관  소장. 119.2 x 59.8cm. 보물 926호.

 

 

수월관음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06.2 x 54.8cm.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보물 1426호.

  

 

수월관음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00.3 x 52.5cm.

우학문화재단 소장. 보물 1286호. 

 

 

수월관음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03.5 x 53.0cm.

호림박물관 소장. 

 

 

수월관음도. 비단에 색. 고려 후기. 105.0 x 58.0cm.

프랑스 기메박물관 소장.

 

 

 

 

 

수월관음도/소장처 : 정가당문고미술관 (일본)

시대 : 고려 /크기 : 110.0×59.2

  

일반적으로 보살은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와 중생의 중간적 존재로 대부분의 보살그림에는 정병과 버드나무 가지, 선재동자가 등장한다. 법화경에는 관세음보살이  8난에 처한 중생을 구제하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데  8난은 큰 바다에서 나찰귀를 만나거나, 험한 산속에서 도적을 만나거나, 함한 산속에서 맹수를 만나거나,불구덩이 속에 갇히거나, 죄인의 몸으로 옥에 갇히는 것 등이다.

 

이런 난을 당했을 때 관음보살을 염불하면 관음보살이 구제해 준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위의 보살그림 중 일본 단잔진자 소장의 수월관음도에서 좌측하단에 선재동자를,오른쪽 하단에 8난에 대한 내용을 표현하고 있어서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 

 

 

 

 

 

 선재동자  

 

 

지장보살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84.5 x 36.8cm.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지장보살도(고려 후기,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는 두건을 쓰지 않은 민머리형의 지장보살로 오른손은 석장을 잡고 왼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올려 손바닥 위에 보주를 올려 놓고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의 부촉을 받아, 그가 입멸한 뒤 미래불인 미륵불(彌勒佛)이 출현하기까지의 무불(無佛)시대에 6도(六道)의 중생을 교화·구제한다는 보살이다. 

 

지장보살도는 죽은 후의 세계를 관장하는 지장보살을 그린 그림.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뒤에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번뇌와 죄업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는 일을 부처남에게서 부탁받은 보살.

 

지장보살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06.8x45.5cm, 일본 네즈미미술관소장

 

 

 

지장보살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98.8 x 50.2cm.

개인 소장. 보물 1287호. 

 

 

지장보살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04.3 x 55.6cm.

삼성미술관 소장. 보믈 784호.  

 

 

 일본 옥림원 소장의 보현보살도(왼쪽)와 문수보살도(오른쪽) 실물. 

가운데는 일본 중요문화제인 아미타불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63.0 x 87.0cm.  

 
 

 


 의 두 그림은 재밌는 일화를 간직한 그림입니다. 고려 불화 중 아미타불도의 다이도쿠지 고쿠린에서 쿄쿠린인 소장의 그림인데 고려 불화가 1점이 아닌 3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보니 실제로는 고려 불화 한 점에 옆에 일본의 보살 그림 두 개를더 그려 넣고 있어서 이번 전시에서는 3점의 그림을 모두 볼 수 있다. 위는 보현보살도, 아래는 문수보살도이다. 보현보살은 불타(佛陀)의 이(理) ·정(定) ·행(行)의 덕(德)을 맡아보는 보살이고, 대승(大乘)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라고 하네요.  

 

 

 

 

 마리지천도/소장처 : 정가당문고미술관 (일본)

시대 : 고려 / 크기 : 116.6×52.8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15.2×59.1cm, 일본 게조인(華藏院) 소장.

 

지장보살과 시왕 등을 한 폭에 그렸다. 지장은 중생을 교화·구제하는 보살이고, 시왕은 죽은 자에 대한 죄의 경중을 다루는 10명의 왕이다. 지장은 맨머리로 표현되나, 고려불화에선 두건을 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지장시왕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11.1 x 60.4cm

호림박물관 소장. 보물 1048호.

지장보살의 권속과 10왕을 함께 그린 그림.

 

 

제 3부 수행자의 모습 나한

 

이밖에도 이번 전시에서는 각국에서 대여해온 나한도들이 한자리 선보이고 있습니다. 나한이란 불제자로서 수행하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인 아라한과를 얻어 일체의 번뇌를 없애고 지혜를 얻은 성자를 말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하여 미국과 일본 등에 나누어 소장된 <오백나한도>의 화기에는 나한의 힘을 빌어 국가의 평안과 국왕의 장수를 빌었던 당시 사람들의 기원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오백나한도> 시리즈 중 10점을 한 자리에서 볼수 있도록 전시하였다.  

 

 


'제329 원상주존자(圓上周尊者)

 
지금 국립주앙박물관의 '고려불화대전'(11월 21일까지)에는 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 연작 열두 폭이 전시되어 있다. 본래 500폭이었을 것이나 한국,미국,일본등에서 확인된 14점 중 12폭이 출품된 것이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준말로 고승을 일컬으며 고려시대에는 나한신앙이 성행하여 많은 나한도가 제작되었다.

그런 중 지금 전해지는 오백나한도는 모두 똑같은 크기(폭 45cm, 길이 65cm)의 비단에 그린 수묵화로 한결같이 국토는 태평하고 임금은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국토태평(國土太平) 성수장천(聖壽長天)'이라는 명문이 있고 김의인(金義仁)이 그린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제작 연도의 반은 을미년이고, 반은 병신년이다. 을미년 다음이 병신년인데, 1236년인 병신년은 바로 팔만대장경이 제조되던 해이므로 이 오백나한도 또한 고종 22년(1235)과 23년(1236)에 대몽항쟁의 의지를 담아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오백나한도는 폭마다 일련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고 저마다 독특한 얼굴과 성격을 갖고 있다. 그중 압권은 '제329 원상주존자(圓上周尊者)'이다. 씨름선수를 연상케 하는 우람한 체격으로 바위에 걸터앉아 한쪽 어깨를 드러낸 채 화면 위쪽의 용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눈빛으로 용을 제압하는 모습인데 인체 데생이 정확하고 필치에는 기운이 생동한다. 고려시대 수묵화가 얼마나 수준이 높았는가를 이 작품은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오백나한도는 오래전부터 일본 이데미츠(出光)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알려져 왔는데 출품표를 보니 국내 개인소장으로 되어 있어 놀랍고 반가웠다. 돌이켜보건대 30년 전만 해도 고려 탱화는 국내에 한 점도 없었고 오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백나한도 7점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리움, 호림박물관, 우학문화재단,아모레퍼시픽 미술관, 개인 컬렉션의 고려 탱화가 11점이고 오백나한도 대표작도 돌아온 것이다. 이런 사실은 해외문화재 환수에 사립 박물관과 개인 소장가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출처] : 유홍준의 국보순례 / 조선일보 

 

 

▲ 오백나한도(제329 원상주존자) 고려 1235년, 비단에 옅은 색, 59x36.8cm, 일암관 소장
 

 

오백나한도(제 145 희견존자). 고려 1236년. 비단에 옅은 색. 59.2 x 42.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시왕도(제8 평등왕)

고려 후기, 비단에 색, 61.2x45cm, 미국 개인소장

 

 

 

 

 

▲ 빈도로존자상, 고려 13세기 십육나한 중 첫번째 나한, 영통사 승려에 의해 조성

 

 

 

 4실 수행자의 모습 나한실 입구에 있는 나한의 동상이다. 십육나한 중 첫번째 나한인 빈도로존자의 모습이다.

빈도로존자는 십육나한 중 첫번째 나한의 이름이며 대좌 앞면에 명문이 새겨져 있어 고려 13세기 영통사 승려에 의해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영통사는 왕실의 진전이 설치되었던 고려 시대 주요 사찰 중 하나였다고 한다.

나한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성자를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누구나 불성이 있기 때문에 ‘부처’ ‘보살’ ‘나한’ 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각자(覺者)라는 점에서는 같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누구든지 일심으로 공부해서 나한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나한 역시 여러 불보살처럼 신통력을 갖춘 존재로 받들어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보살과 다른 점은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나한들은 대개 실존인물이라는 것이다.

 

 

 

제 4부 이웃나라의 불보살

 


 

이 사진은 이웃나라의 불화들을 선보이는 전시실 입구의 모습입니다. 고려 후기에는 중국 남송의 수도인 항저우와 원의 국제 무역항인 닝보에서도 불화가 활봘히 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들 지역의 불화는 아미타불의 엄숙한 분위기부터 사왕도의 자극적인 표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이들 작품을 감상하심으로써, 우리 고려불화의 우수성을 더욱 실감하실 것 입니다.

 

 

아미타삼존도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10.0*51.0cm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국보 218호

 

 아미타불이 보살들을 거느리고 극락에 왕생할 사람을 맞이하러 오는 ‘내영도來迎圖’ 형식의 고려불화이다. 아미타불의 머리에서 뻗어나온 빛은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은 왕생자를 감싸면서 그가 아미타불에 의해 극락왕생의 길로 곧 인도될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아미타불 앞으로 나와 왕생자에게 다가선 관음보살은 허리를 굽혀 그가 올라탈 금련화金蓮花를 내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서하西夏에서 그려진 아미타내영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으로 그 관련성이 오래 전부터 주목받고 있다.

 

 

 

 

아미타삼존내영도
서하西夏 13세기, 면에 색, 142.5*94.0cm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세지보살이 구름을 타고 극락에 왕생할 사람을 맞이하러 오는 아미타삼존내영도이다. 나무 밑에 앉은 왕생자는 승려 차림으로 두 손을 합장하고 있으며, 그의 머리에서 마치 영혼과 같은 빛줄기가 위로 발하고 있다. 빛줄기 속에는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 어린아이가 막 연꽃 위에 오르려 하고, 아미타불의 이마에서는 서기가 내려와 어린아이를 감싸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고려불화 중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아미타삼존도>와 가까워 흥미롭다.


같은 아미타 삼존 내영도를 그린 서화불화(왼쪽)와 고려불화(오른쪽)입니다.  두 그림은 똑 같은 화면의 구도를 특징으로 합니다.두 그림 왼쪽 아래 작은 망자에게 아미타 삼존이 빛줄기를 내리거나 몸을 굽히거나 손을 내밀어 맞이하는 구도를 하고 있지만, 고려불화에서 보여지는  부처와 보살상의 옷과 몸에서 드러나는 품위 어린 원색과 다른 중, 일 불화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하고 정교한 동식물 무늬들은 다른 불화와 확연히 구분된다고 한니다. 

 

  

 

시왕도(十王圖, 제 5 염라대왕). 중국 남송 15세기. 비단에 색. 83.2 x 47.0cm.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 여의륜관음도(전시장벽의 프린팅)

일본 가마쿠라 13-14세기, 일본중요문화재

 

 

 

 

 

 

 

 

 

 

 

 

 

 

 

  
 
 

    5 전시실은 이웃나라의 불보살관으로 특별히 중국과 일본의 불화도 볼 수 있다. 고려 후기에는 중국의 남송의 수도인 항저우와 원의 국제 무역항인 닝보 지역에서도 불화가 활발히 제작되고 있었다. 중국의 불화는 색채가 화려한 것이 특징입니다.

 

비슷한 시기의 일본은 가마쿠라 시대로 불교계가 큰 변화를 겪었다. 헤이안 시대의 불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송원대의 불화의 영향도 받아들이면서 크게 발전한다. 일본의 불화는 그림 안에 많은 요소를 담은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중국 서하 12-13세기의 아미타불도, 제 5 염라대왕을 그린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소장의 시왕도 죽은 후에 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소망을 그린 일본의 아미타내영도, 일본 가마쿠라 시대의 여섯 개의 어금니를 가진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의 모습까지...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불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제 5실  전통의 계승

 

조선시대 불교는 억불 정책으로 인해 고려시대에 비해 위축되었지만, 효령대군이나, 문정왕후 등 왕실의 젖극적인 후원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불사는 고려불화의 전통이 조선전기까지 이어지게 하는 큰 역할을 하였다. 조선 전기 불화들은 황실발원 불화로도 불리며, 그 섬세함과 화려함, 그리고 수준 높은 기법에서 고려불화의 여운을 느끼게한다.  이번 전시에는 조선 전기 불화 5점이 선보였다.    

  

고려불화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예술품 아니, 예술품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바로 형, 색, 선, 무늬의 조화와 섬세함에서 비롯되었다로 할 것이다. 섬세하고 단아한 형태, 원색을 주조로 한 화려한 색채화 호화로운 금니, 그리고 화면 가득 촘촘한 무늬를 넣는 특유의 독창적 양식을 발전시킨  흐르는 듯 유려하면서도 힘 있는 선묘를 지닌 고려불화는 동아시아의 독보적인 미의 세계를 창조했다고 할 것이다.  

 

이번 전시는 고려 불교의 정신과 고려인들의 숨결을 함축한 고려시대의 문화상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면서 팽생 다시 만나기 어려운 뜻 깊은 전시가 될 것이다.   

 

 

보물 1287호 지장삼존도(地藏三尊圖)

 

 

지장삼존도

보물 1287호 지장삼존도(地藏三尊圖·사진)는 고려 불화 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위치에 있는 명작이다. 예배 대상으로서의 지장보살도가 아니라 회화적으로 재해석된 작품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본래 지장보살은 지옥에 빠진 중생이 모두 구제될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포기하여 삭발한 스님이나 두건을 쓴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명부(冥府)의 세계를 주재하면서 염라대왕, 평등대왕 등 시왕(十王)을 거느리며 저승에 온 자를 49일간 심판하여 천상의 자리를 배정한다. 절에서 49재를 지내는 근거가 여기에 있으며 이 때문에 지장보살은 구복신앙의 대상으로 인기가 높았다.

대부분의 지장보살도는 독존상으로 표현되거나 20명이 넘는 권속(眷屬)들을 지장보살 무릎 아래에 밀집시킨 상하 2단 구도로 지장의 권위를 한껏 드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 지장삼존도는 많은 권속 중 오직 비서실장격인 무독귀왕(無毒鬼王)과 도명존자(道明尊者) 둘만 거느린 간명한 구성이고 고려 불화로서는 예외적으로 좌우 대칭에서 벗어난 동적인 구도를 하고 있다.

금강대좌 위에 반가부좌를 한 잘 생긴 스님 모습의 지장보살이 왼손에 여의주를 들고 있는데 그가 항시 지니고 다니는 고리가 6개인 육환장(六環杖)이라는 지팡이를 도명존자가 받들고 올려다보고 있다. 무독귀왕은 금으로 만든 경전합을 정중히 모시고 지장을 보필하고 있는데 화면 아래쪽에는 사자 한 마리가 혀를 길게 내민 채 넙죽 엎드려 있다. 무언가의 스토리텔링이 있다. 엄격하고도 경직된 것이 불교 도상 체계인데 어떻게 이처럼 능숙하게 구도를 변형시킬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높이 1m의 이런 아담한 고려 탱화(幀畵)들은 사찰이 아니라 권문세족(權門勢族) 저택의 원당(願堂)에 모셔졌던 것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모든 유물은 그것의 생산과 소비 과정을 살필 때 그 예술적 가치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된다

[출처] : 유홍준의 국보 순례 / 조선일보

 

 

묘법연화경 제1권. 

 

 

약사삼존도. 조선 1565년. 비단에 금.

왼쪽 54.2 x 29.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른쪽 58.7 x 30.8cm (일본 도쿠가와미술관 소장).

 

 

 

사(4)불회도. 조선 1562년. 비단에 색. 77.8 x 52.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1326호.

 

 

 
불심으로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힘든 세상에서 부처에 의지해 희망을 가지던 시절, 고려.  그 고려에 부처를 그린 불화가 현재 남아있는 것은 160여점이며,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은 불과 10여점입니다. 고향을 떠나 독일, 러시아, 일본 등지에서 떠돌던 부처님들이 700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잠시나마 터를 잡았다. <고려불교대전 700년만의 해후> 

 

 


 
  

관음보살좌상(고려 14세기)


 
 

   왼쪽과 오른쪽 위는 천수관음이 손에 든 여러 지물 중 금강령과 금강저입니다. 금강저는 벼락을 형상화한 제석천의 무기이며 금강령은 종과 금강저를 결합한 형태의 것이다.

 

오른쪽 아래는 관음보살경상(고려)인데 경상은 동경의 면에 선각, 또는 묵서 등으로 존상(尊像)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나라 경상은 주로 원형이나 방형 등의 동판에 관음상, 보탑, 사천왕 등을 많이 새겨 넣었다. 이러한 경상은 일상생활용구가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와 상징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많은 인물이 빼곡이 등장하는 지장시왕도(고려후기, 일본 게조인 소장). 지장보살은 용의 머리로 장식된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고, 그는 지옥에 빠진 중생들을 구제하는 보살입니다. 그 옆에는 시왕(十王)이 다스리는 지옥의 모습도 같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보물 제 1048호 호림박물관의 지장시왕도보다 훨씬 보존상태도 좋고, 보살의 모습이나 시왕의 모습도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여섯번째 전통의 계승실]의 모습에서는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고려 시대에 비해 위축된 불화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섬세하고 화려한 고려 시대의 그림들은 점점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조선 전기 왕실에서나마 잠깐 빛을 발한 그림을 마지막으로 사라져 버린 고려의 불화들을 볼 수 있는 것이죠. 

 

160여점 중 외국에 쓸쓸이 흩어져 버린 고려의 불화들이 잠시나마 한국땅을 밟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러 상황으로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는 고려 불화들을 보면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하지만, 외국에서도 이 불화들을 보면서 부처님께 염원을 가지고, 또 이 불화들을 보면서 그들이 고려의 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감탄할 수 있다는 면에서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네요. 모쪼록 외국에 가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다시 돌아보고, 고려 불화의 우수성에 대해 많은 분들이 널리 알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글쓴이 : 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 명예기자 송은정] 

참고자료 : 네이버 백과사전, 보도자료, 고려불화대전 대도록

 

 

▲ 동영상(부분) 

   

 

고려시대의 아름다운 불화가 실로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12일부터 11월 21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고려불화대전-700년 만의 해후>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유물은 총 108점이다. 국내 뿐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유럽에 소재해 있는 불화들이 총동원됐다. 주요 출품기관은 국내의 삼성리움미술관, 일본의 동경국립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주박물관 등 총 44개 처다. 시기상으로는 고려불화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 전기 불화까지 포함해 총 68점의 불화가 모였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고려문화는 청자가 대표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고 그만큼 많이 보유하고 있어 연구가 활발했다. 반면 고려의 불화는 많이 제작됐음에도 우리나라가 많이 보유하지 못해 흔히 볼 수 없었고 연구가 잘 안됐었다”며 “이번 전시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고려불화를 총망라하는 것이다. 전후 무후한 불화전이 될 것”이라고 큰 기대를 표했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에 고려인들은 사찰을 세우거나 불화를 조성해 각자의 소망을 발원했다. 현재 남아있는 고려불화는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당시 고려인의 높은 미적 수준을 보여준다.

전시는 1부 깨달음의 존재, 부처’, 2부 ‘중생의 구제자, 보살’, 3부 ‘수행자의 모습, 나한’, 4부 ‘이웃나라의 불보살’로 구성됐다. 현존하는 고려 불화에서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는 것은 아미타불, 관음보살, 지장보살을 그린 정토계(淨土界) 불화다. 정토계 불화는 고난으로부터의 구제, 극락왕생 등 현실적인 기원과 관계가 깊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고려불화도  정토계 불화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훅’하는 습기가 느껴졌다. 이유는 비단 위 천연안료로 그려진 불화가 특성상 습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전시실 습도가 55~60% 정도를 유지해야 유물의 손상이 덜 가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는 정토신앙이 성행해 아미타불을 그린 불화가 많은데 1부에 전시된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가 대표적이다. 하나는 삼성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아미타삼존도’이고 또 하나는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품인 ‘아미타삼존도’이다. 에르미타주박물관의 그것은 서하 불화 3점 중 하나로 국내에서 처음 공개됐다. 고려시대 그려진 아미타불 머리 뒤에서 빛나고 있는 두광의 형식이 일찍이 서화의 불화로부터 기원한 것을 알게 해준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불교문화 속에서 고려시대 불교문화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불교신자들에게 가장 친근한 불화라 하면 '관음보살도(觀音菩薩圖)'인데 2부에 전시됐다. 관음보살은 대승불교를 추구하고 실천, 수행하는 대표적 보살로 가장 많이 그려졌다. 관음보살도에는 관음보살이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고 그를 방문한 선재동자(善財童子)와 보살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버들가지, 곁에 높여진 정병이 일반적 모티브로 쓰인다. 여기서 버들가지는 병을 치유한다는 의미를, 정병은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즉 소원을 풀어준다는 의미를 상징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수월관음도’와 이름은 같지만 다른 형식으로 그려진 불화가 전시됐다. 고려불화의 우수성을 집약하고 있는 것으로 바로 일본 센소지 소장의 ‘수월관음도’다.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들고 있다고 하여 '양류관음도(楊柳觀音圖)'라고도 한다.  고등학교 구갓 교과서에 나온 고려시대 최고의 불화인 혜허(慧虛)가 그린 ‘양류관음도’가 이것이다. 은은한 녹색의 물방울모양의 광대 속에 서 있는 관음보살이라 하여 ‘물방울 보살’이라고 불린다.

민병찬 전시팀장은 “작품을 자세히 보면 투명한 베일위에 세밀한 문양을 새겨 넣어 최고의 디테일을 보여준다. 문양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인 것을 통해 고려인들의 불심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보살의 표정은 가장 자비로운 단계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이다. 거기에서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며 작품의 우수성을 자랑했다.

이렇듯 우수한 고려시대의 불화를 한 자리에 모으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이전 개관 5주년과 G20  정상회의를 기념해 고려불화전시를 하려고 계획했으나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불화는 10여점 남짓이었던 것. 정작 상당수의 예술성이 높은 불화는 일본에 건너가 있었다.

이를 위해 최광식 관장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고려불화가 있는 사찰들을 돌아다니며 한국전시를 위해 일시적으로 대여해 줄 것을 설득했다.

최광식 관장은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문화재 반환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측은 불화가 한국에 가면 다시 못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염려를 했었다. 하지만 ‘불화도 자기고향에 한 번은 가보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여러 사찰들이 대여를 허락해 줬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어렵게 내놓은 까닭에 몇몇 불화들은 전시 기간 중 일부 기간만 전시된다. 힘들게 모인 고려불화들의 고향 나들이가 특별하며 동시에 애틋한 이유다.

 

출처 : 정혜(正慧)의 세상사는 이야기
글쓴이 : ohjbac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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