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봉암사 동안거 반결제 현장
겨울 삭풍 벗삼아 오로지 화두 참구
지난해 12월5일 전국 100여 곳의 선원에서 동안거 결제가 시작된 이후 지난 24일로 중간기착일인 반결제일을 넘겨 50여일이 흘렀다. 이번 동안거 결제에도 조계종 소속 2200여 수행자들은 3개월 동안 화두를 참구하며 자아를 완성시키는 용맹정진에 한창이다. 특히 엄격한 ‘공주규약(共住規約)’으로 한국불교의 선풍(禪風)을 바로 세웠고 성철스님 등 훌륭한 선지식들을 다수 배출했던 조계종 문경 봉암사의 동안거 현장은 치열하다 못해 생사를 넘나든다. 반결제일을 넘기며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과 함께 봉암사의 수행현장을 찾았다.
<사진설명: 동안거 반결제일과 결사60주년을 맞아 기자들에게 산문을 개방한 지난 24일 문경 봉암사에서 안거중인 기본선원 스님들의 방선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코끝을 맴돌던 날카로운 바람이 폐부 깊숙이까지 스며들어 한기가 느껴지던 지난 24일, 문경 봉암사는 ‘이유 있는 정중동(靜中動)’의 열기로 후끈했다. 간혹 겨울땔감을 만들기 위해 장작 패는 소리, 얼음이 녹는 계곡의 물결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다. ‘희양산 봉암사’ 일주문과 물결곡선의 담벼락을 눈으로 따라가며 즐거운 침묵을 즐길 즈음, 맞닥뜨린 희양산의 서슬 푸른 위용은 이곳이 종립특별선원 봉암사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한다.
하루 12시간 수행을 하며 10개월 결사를 진행 중인 20명 수좌가 있는 ‘서당’과 하루 10시간 3개월 안거중인 21명의 수좌가 있는 ‘성적당’ 그리고 사미스님 20여명이 있는 기본선원은 마치 이 세상 건물이 아닌 것처럼 적막했다.
부처님오신날 외에는 일체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문경 봉암사가 결사 60주년을 기념해 지난 24일 하루 동안만 기자들에게 문을 개방했다. 잠 안자고 수행하는 용맹정진으로 유명한 봉암사는 주지 함현스님의 말을 빌리면 “전국 선방 수좌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산문폐쇄 굳센 원력 60여 스님 정진
엄격한 청규따라 수행하는 ‘수좌들의 고향’
방선시간과 함께 선방을 나온 선원장 정광스님이 주지실에 들러 10개월 결사를 진행 중인 서당의 분위기를 전한다. 정광스님은 “10개월 결사의 목적은 정과 혜를 닦아 부처님의 심인법을 이어나가는 것”이라며 “지증대사탑비에 있는 조부모성(朝夫暮聖, 아침에 범부였지만 저녁에는 성인이 된다)정신을 실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설명: 봉암사 스님들이 땔감을 장만하며 운력을 하고 있다.>
하루 12시간 4차례 참선수행이 이뤄지는 서당의 일과는
청규가 엄격하기로 유명한 봉암사는 수행이 어려워 퇴방하는 스님들도 많다. 대중화합을 깨뜨려서는 안된다 등 청규도 무려 20가지. 봉암사의 한 스님은 “참선수행은 여간한 마음과 의지가 없으면 어려운 법”이라며 “이번 결사에도 스님 중 삼분의 일정도가 청규 위반과 건강이상으로 퇴방했다”고 말했다. 선원장 정광스님은 “가능하면 음식을 적게 먹고 쉬는 시간이면 보행과 산행을 하는 등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고 가기보다는 적절히 배려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방선시간이 끝나고 선방의 반장격인 ‘청중’스님의 죽비소리에 수행자들이 다시 선방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잠시 머물던 번뇌가 굳건한 화두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다. 문이 닫히고 다시 빠져드는 깊은 고요. 이번 동안거수행에는 나이가 연로해 서당과 성적당에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별도로 안거에 참여하는 세수 97세의 월봉스님도 있다.
이중에서 단연 인기는 화장실 청소를 맡는 ‘정통’이라는 소임이다. 기피하는 일로 꼽히는 세간의 화장실 청소와는 달리 봉암사의 화장실 청소는 아무나 맡는 게 아니다. 법납이 가장 높은 스님이 맡는다. “가장 어려운 일이 복도 가장 많이 짓는다”는 수행자적 생각을 읽힌다. 봉암사 동안거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산감(山監)’이라는 직책이다. 산문폐쇄가 시행되고 있지만 호기심 많은 관광객들이 밀려들어 산이 훼손되기에 스님들이 직접 수행환경을 지키고 나선 것. 물론 산감 임무 중에도 스님들은 화두를 놓지 않는다. 결제, 해제 구분 없이 늘 화두를 드는 수좌들에게 구분은 큰 의미가 없고 단지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을 다잡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10여명의 스님들이
신라시대 구산선문을 시작으로 선풍가풍을 면면히 계승해온 봉암사, 계곡의 깨진 얼음 밑으로 봄을 알리는 희망이 흐르고 있었다.
● 종립특별선원 선원장 정광스님
“수행은 인류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일”
종립특별선원 봉암사의 선방을 책임지고 현재 10개월 결제를 이끌고 있는 선원장 정광스님은 40여년 넘게 봉암사에서 수행하고 있는 선방의 산역사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을 보내듯 10은 만수(滿數)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0개월 결제는 그런 의미에서 어려움이 따릅니다.” 스님은 결제에 참여한 대중들에게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결제에 참여하신 분들은 정혜결사를 통해 부처님의 지혜 덕성인 진여자성을 갖추고자 모였습니다. 여기에 체와 용이라는 근원적인 인격과 사회봉사정신이 더해져 완벽한 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인류의 행복에 이바지하겠다는 부차적 의미도 담겨있는 것이지요.”
스님은 현재 하루 12시간 수행 정진하는 10개월 결제 중 9개월을 보내고 있다. “옛 스님들은 오랫동안 마음을 닦아 절대로 변치 않은 마음을 가져야 도를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생 몸을 던지겠다는 각오로 수행에 임해야 합니다.”
“평상심으로 공부를 짓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실히 느낀다”는 스님은 간혹 어려움을 호소하는 수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대중공사를 열고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문제는 근원적으로 스스로 해결할 일이다.
인터뷰를 마친 스님은 기자를 향해 “말이 짧아 죄송하다”고 합장했다. 가사자락을 휘날리며 도량을 걸어가는 스님의 모습에서 희망이 느껴지는 건 과장된 표현일까.
● 전 중앙종회의장 지하스님
“희양산 돌산이 내게 힘을 줍니다”
“몸은 고달파도 마음이 편하니 얻는 것이 더 많습니다” 승가사회의 국회의장격인 ‘조계종 중앙종회의장’을 끝으로 40여 년간의 종단 일을 접고 이제는 평범한 수행자가 된 지하스님은 봉암사 선방에서 “방하착(放下着)”수행에 전념하고 있었다.
“이제는 나이도 들었고 종단일은 모두 후배스님들에게 맡겼으니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려 합니다. 마음의 집착을 내려놓는 수행이지요”
2004년 제13대 중앙종회의장 소임을 내려놓자마자 봉암사로 찾아든 스님은 벌써 5번의 안거철을 보냈다. 까칠한 수염과 기워 입은 헤진 승복 속으로 과거 스님 특유의 깔끔한 이미지와 종회를 호령하던 큰 목소리가 묻히는가 싶지만 수행자의 청빈함과 번뜩이는 납자의 눈빛, 부드러운 미소는 그 옛날 스님의 모습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종립선원으로 365일 조용하고 공부하기 딱 좋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으니 봉암사를 찾았습니다. 때론 인생이 인사치례만 있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이런저런 왕래 없고 모든 인연을 끊으니 훨씬 자유로워진 느낌입니다”
40여 년간 종단 일에만 전념했던 스님이기에 선방수행 경험은 사실 봉암사 수행이 전부. 수행이 절박하고 알차진 이유이기도 하다. 취재를 마치고 떠나는 기자를 향해 지하스님은 “체력이 닿는 한 봉암사에 있을 것”이라며 “희양산 돌산이 내게 힘을 준다”고 특유의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문경=
사진=
[불교신문 2298호/1월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