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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경 봉암사 동안거 반결제 현장

무한대자유 2014. 3. 4. 09:52

문경 봉암사 동안거 반결제 현장

 

겨울 삭풍 벗삼아 오로지 화두 참구

 

지난해 125일 전국 100여 곳의 선원에서 동안거 결제가 시작된 이후 지난 24일로 중간기착일인 반결제일을 넘겨 50여일이 흘렀다. 이번 동안거 결제에도 조계종 소속 2200여 수행자들은 3개월 동안 화두를 참구하며 자아를 완성시키는 용맹정진에 한창이다. 특히 엄격한공주규약(共住規約)’으로 한국불교의 선풍(禪風)을 바로 세웠고 성철스님 등 훌륭한 선지식들을 다수 배출했던 조계종 문경 봉암사의 동안거 현장은 치열하다 못해 생사를 넘나든다. 반결제일을 넘기며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과 함께 봉암사의 수행현장을 찾았다.

 

 

<사진설명: 동안거 반결제일과 결사60주년을 맞아 기자들에게 산문을 개방한 지난 24일 문경 봉암사에서 안거중인 기본선원 스님들의 방선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신재호 기자>

 

코끝을 맴돌던 날카로운 바람이 폐부 깊숙이까지 스며들어 한기가 느껴지던 지난 24, 문경 봉암사는이유 있는 정중동(靜中動)’의 열기로 후끈했다. 간혹 겨울땔감을 만들기 위해 장작 패는 소리, 얼음이 녹는 계곡의 물결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다. ‘희양산 봉암사일주문과 물결곡선의 담벼락을 눈으로 따라가며 즐거운 침묵을 즐길 즈음, 맞닥뜨린 희양산의 서슬 푸른 위용은 이곳이 종립특별선원 봉암사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한다

하루 12시간 수행을 하며 10개월 결사를 진행 중인 20명 수좌가 있는서당과 하루 10시간 3개월 안거중인 21명의 수좌가 있는성적당그리고 사미스님 20여명이 있는 기본선원은 마치 이 세상 건물이 아닌 것처럼 적막했다.

부처님오신날 외에는 일체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문경 봉암사가 결사 60주년을 기념해 지난 24일 하루 동안만 기자들에게 문을 개방했다. 잠 안자고 수행하는 용맹정진으로 유명한 봉암사는 주지 함현스님의 말을 빌리면전국 선방 수좌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산문폐쇄 굳센 원력 60여 스님 정진

엄격한 청규따라 수행하는수좌들의 고향’ 

 

오전 11, 방선(放禪)시간이 되자 적막했던 선방 문이 하나씩 열리고 그림처럼 앉았던 스님들이 일제히 일어나 졸음을 쫒고 굳어진 몸을 푸는 경행(經行)을 시작했다. 봉암사는 지난 1982년 이후 25년째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날도 결국 기자들에게 선방은 공개되지 않았다.  

방선시간과 함께 선방을 나온 선원장 정광스님이 주지실에 들러 10개월 결사를 진행 중인 서당의 분위기를 전한다. 정광스님은 “10개월 결사의 목적은 정과 혜를 닦아 부처님의 심인법을 이어나가는 것이라며지증대사탑비에 있는 조부모성(朝夫暮聖, 아침에 범부였지만 저녁에는 성인이 된다)정신을 실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설명: 봉암사 스님들이 땔감을 장만하며 운력을 하고 있다.>

 

하루 12시간 4차례 참선수행이 이뤄지는 서당의 일과는 새벽2 입선(入禪)을 시작해 오전5 방선, 오전8 입선, 11 방선, 오후 2 입선, 4 방선 및 청소, 오후6 예불 입선, 10 방선으로 진행된다. 하루 10시간 참선수행이 진행되는 성적당은 새벽3 입선을 시작으로 오전5 방선, 오전8 입선, 11 방선, 오후2 입선, 4 방선 및 청소, 오후6 예불 입선, 9 방선으로 이뤄진다.

청규가 엄격하기로 유명한 봉암사는 수행이 어려워 퇴방하는 스님들도 많다. 대중화합을 깨뜨려서는 안된다 등 청규도 무려 20가지. 봉암사의 한 스님은참선수행은 여간한 마음과 의지가 없으면 어려운 법이라며이번 결사에도 스님 중 삼분의 일정도가 청규 위반과 건강이상으로 퇴방했다고 말했다. 선원장 정광스님은가능하면 음식을 적게 먹고 쉬는 시간이면 보행과 산행을 하는 등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고 가기보다는 적절히 배려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방선시간이 끝나고 선방의 반장격인청중스님의 죽비소리에 수행자들이 다시 선방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잠시 머물던 번뇌가 굳건한 화두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다. 문이 닫히고 다시 빠져드는 깊은 고요. 이번 동안거수행에는 나이가 연로해 서당과 성적당에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별도로 안거에 참여하는 세수 97세의 월봉스님도 있다.   

오후 4가 되면 모든 선방은 방선과 청소 시간. 봉암사의 일사분란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청소와 함께 각자에게 할당한 소임업무를 완수한다. 병법(기도를 책임지는 스님), 헌식(음식을 제공하는 스님), 화대(온돌을 책임지는 스님), 명등(도량조명을 맡는 스님), 간병(병든 스님에게 약을 제공하는 스님), 정통(화장실 청소를 맡는 스님), 욕두(목욕탕 청소를 맡는 스님), 서기(물품장부를 적고 문서를 담당하는 스님), 고두(창고를 관리하는 스님), 다각(차담을 담당하는 스님) 등 역할도 가지각각이다.

이중에서 단연 인기는 화장실 청소를 맡는정통이라는 소임이다. 기피하는 일로 꼽히는 세간의 화장실 청소와는 달리 봉암사의 화장실 청소는 아무나 맡는 게 아니다. 법납이 가장 높은 스님이 맡는다. “가장 어려운 일이 복도 가장 많이 짓는다는 수행자적 생각을 읽힌다. 봉암사 동안거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산감(山監)’이라는 직책이다. 산문폐쇄가 시행되고 있지만 호기심 많은 관광객들이 밀려들어 산이 훼손되기에 스님들이 직접 수행환경을 지키고 나선 것. 물론 산감 임무 중에도 스님들은 화두를 놓지 않는다. 결제, 해제 구분 없이 늘 화두를 드는 수좌들에게 구분은 큰 의미가 없고 단지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을 다잡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10여명의 스님들이 오전8부터 오후10까지 순환하며 백두대간의 단전이라 불리는 희양산을 지킨다. 휴일이면 등산객들이 늘어 산감스님도 20명으로 늘었다. 주지 함현스님은부처님오신날 하루만 개방해도 희양산이 쓰레기로 덥히고 계곡이 흐려지더라국가가생태보전 유전자보호지역으로 지정했지만 백두대간 등산객들이 갈수록 밀려들어 선방스님들은 산 감시하랴 수행하랴 바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신라시대 구산선문을 시작으로 선풍가풍을 면면히 계승해온 봉암사, 계곡의 깨진 얼음 밑으로 봄을 알리는 희망이 흐르고 있었다.


문경=배재수 기자 dongin21@ibulgyo.com

 

종립특별선원 선원장 정광스님

 “수행은 인류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일” 

 

 

종립특별선원 봉암사의 선방을 책임지고 현재 10개월 결제를 이끌고 있는 선원장 정광스님은 40여년 넘게 봉암사에서 수행하고 있는 선방의 산역사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을 보내듯 10은 만수(滿數)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0개월 결제는 그런 의미에서 어려움이 따릅니다.” 스님은 결제에 참여한 대중들에게정혜결사(定慧結社)”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결제에 참여하신 분들은 정혜결사를 통해 부처님의 지혜 덕성인 진여자성을 갖추고자 모였습니다. 여기에 체와 용이라는 근원적인 인격과 사회봉사정신이 더해져 완벽한 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인류의 행복에 이바지하겠다는 부차적 의미도 담겨있는 것이지요.”
 
스님은 현재 하루 12시간 수행 정진하는 10개월 결제 중 9개월을 보내고 있다. “옛 스님들은 오랫동안 마음을 닦아 절대로 변치 않은 마음을 가져야 도를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생 몸을 던지겠다는 각오로 수행에 임해야 합니다.”
 “
평상심으로 공부를 짓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실히 느낀다는 스님은 간혹 어려움을 호소하는 수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대중공사를 열고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문제는 근원적으로 스스로 해결할 일이다.
 
인터뷰를 마친 스님은 기자를 향해말이 짧아 죄송하다고 합장했다. 가사자락을 휘날리며 도량을 걸어가는 스님의 모습에서 희망이 느껴지는 건 과장된 표현일까.

 

전 중앙종회의장 지하스님

희양산 돌산이 내게 힘을 줍니다
 

 



 “몸은 고달파도 마음이 편하니 얻는 것이 더 많습니다승가사회의 국회의장격인조계종 중앙종회의장을 끝으로 40여 년간의 종단 일을 접고 이제는 평범한 수행자가 된 지하스님은 봉암사 선방에서방하착(放下着)”수행에 전념하고 있었다.

이제는 나이도 들었고 종단일은 모두 후배스님들에게 맡겼으니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려 합니다. 마음의 집착을 내려놓는 수행이지요”  

2004년 제13대 중앙종회의장 소임을 내려놓자마자 봉암사로 찾아든 스님은 벌써 5번의 안거철을 보냈다. 까칠한 수염과 기워 입은 헤진 승복 속으로 과거 스님 특유의 깔끔한 이미지와 종회를 호령하던 큰 목소리가 묻히는가 싶지만 수행자의 청빈함과 번뜩이는 납자의 눈빛, 부드러운 미소는 그 옛날 스님의 모습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종립선원으로 365일 조용하고 공부하기 딱 좋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으니 봉암사를 찾았습니다. 때론 인생이 인사치례만 있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이런저런 왕래 없고 모든 인연을 끊으니 훨씬 자유로워진 느낌입니다

40여 년간 종단 일에만 전념했던 스님이기에 선방수행 경험은 사실 봉암사 수행이 전부. 수행이 절박하고 알차진 이유이기도 하다. 취재를 마치고 떠나는 기자를 향해 지하스님은체력이 닿는 한 봉암사에 있을 것이라며 희양산 돌산이 내게 힘을 준다고 특유의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문경=배재수 기자

사진=신재호 기자

[불교신문 2298/1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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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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