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내가 절을 찾는 일은 달라질것이 없다..영월 보덕사에서

무한대자유 2014. 2. 20. 21:15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668년(문무왕 8)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지덕사(旨德寺)라고 했다.

그뒤 1161년(의종 15)에 운허(雲虛)가 중창하고, 다시 원경국사(元敬國師)가 극락보전·염불당·고법당·침운루 등을 증축했다.

1457년(세조 3)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유배되자 절이름을 노릉사(魯陵寺)라고 했다.

1705년(숙종 31) 단종의 능인 장릉(莊陵:사적 제196호)의 원찰이 되었고,

1726년(영조 2)에 장릉수호조포사(莊陵守護造泡寺)라는 은전을 받고 다시 보덕사로 바꾸었다.

월정사의 말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절이었으나 6·25전쟁 때 거의 소실된 것을 최근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현존 당우로는 극락보전·대현전·목우실·산신각·심검당·칠성각·사성각·객방 등이 있고

단종의 그림을 모신 산신각과 전통양식의 해우소가 유명하다.

절 옆에는 단종의 장릉이 있다.

(보덕사 안내참고)

 

 

 

 

 

 

 

극락보전..

고려 의종 15년(1161년) 운허선사와 원경국사가 늘려 지었다고 전한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앞면 가운데 칸은 5개의 빗살문, 양 옆칸에는 각각 3개의 빗살문을 달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며 현판은 김규진이 썼다.

지금 있는 극락보전은 조선 후기의 양식을 갖추고 있는 건축물이다

 

 

 

 

 

 

 

산신각..

산신각 안에는 백마를 탄  단종과 머루바구니를 들고 있는 충신 추익한이 그려져있다.

충신으로 불린 추익한은 한성부윤을 지냈던 사람으로,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어 외롭게 지낼때 산머루를 따다가 드리며 자주 문안을 드렸다고 한다.

어느날도 산머루를 따서  받치려구 내려오는 길에 연하리 계사폭포에서 단종을 만났는데,

곤룡포에 익선관 정장 차림으로 백마를 탄 모습을 보고 어디로 가시냐고 묻자, 단종은 태백산으로 간다라고 말하고, 홀연히 살아져버렸다 한다. 

추익한은  급히 단종의 처소로 가보니 이미 변을 당한 뒤, 그후 단종을 만났던 연하리 계사폭포에 가서 그도 단종의 뒤를 따라 자결했다 전한다.

김기창 화백이 상상해서 그렸다는 이 그림은 영월, 정선, 태백지방의 사찰 산신각에 많이 모셔졌는데

단종을 태백산 산신령으로 신격화되어 군왕신의 하나로 모셨기 때문이다.

태백산 정상에서는 산신인 단종에게 제사를 드리는 단종태백산신제가 매년 열리고

영월에서 태백산방향으로 단종사당이 쾌 많았는데, 김신조 간첩사건 이후 은신처로 판단되어 대부분 철거되고,

영월 방절리등 일부지역에서만 무속신앙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일부 스님이 도박을 하시든, 룸싸롱을 가셨는

그걸 폭로하는 스님 또한 다르지 않고 그 속내가 구리다하더라도

내가 절을 찾는 일은 달라질 것이 없다.

일주문을 지나고 천왕문을 지나 석가와 산신령을 만난다..

나를 만난다.

 

 

 

 

 

출처 : zoje...
글쓴이 : 조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