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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불교로 이해하는 현대철학-5

무한대자유 2012. 12. 13. 20:45
제21강 하이데거 철학과 불교 - 존재의 두 방식
존재..
 
존재의 두 방식.
 
 
 
1)경이의 방식 : 있는 그대로 있음
경이. 경외 신비로 이해 사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자체에 놀라움을 느낌
있는 그대로 있음. (있음자체 존재 자체)으로 이해
 
우리는 주관적으로 객관적인 판단을 해서 가치로운 것을 찾으려 한다.
 
장미가 피어난 것은 물物이 아니라 사事 사건이다.
인연과 인연이 만난 것의 사건이다.
 
..신을 믿는 곳에서 구원이 있는 것이아니라 우리 생각 방식을 전환 할 때
구원이 있는것이다.
나무를 꽃을 보면 쓰기 위해서 베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이다.
 
존재의 두 방식.
2) 일상의 방식
존재자가 존재한다. 그래서 어찌했냐?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문제는 :"그존재자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직업과 봉급으로 사람을 평가하려고 한다. 그것은 지배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심
무심
방하착

분별심을 내려놓자

 

 

 
하이데거의 중심은 존재이고
존재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산은 산이다 - 일상의 방식
하이데거 = 우리에 대해 무엇으로 있음
불교=자성
 
산은 산이 아니다
하이데거-존재자성이 아니다.
불교-무자성 - 진공 철저하게 모든 것을 공으로 보는 것.
집착
 
산은 역시 산이다.
하이데거-있는 그대로 있음 존재자체
반야
 
주객이 무너저야 한다.
내가 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벽이 나를 보는 상태
불교-진여 주관과 객관이 나누어져 있지 않는 상태.
자비
 
없는 것도 있다.
철저하게 비워냈을 때 다들어낸다.
 
 
고대 : 형상 - 모사물 - 모사되어 있음 - 기하학
중세 : 현실성 - 피조물 - 하느님으로 창조 되어 있음 -신학
근대 : 표상성 - 대상 - 표상되어 있음 - 인식학 수학 인간학
현대 : 몰아세움 - 부품.- 몰아 세워져 있음 - 테크놀로지. 기술
사물은 사물되로 인간은 인간되로 어느 곳에 쓰여지는 부품으로 전락된다.
이것은 시대마다 표준이 되는 존재를 보는 관점이다.
 
..사물이 부품화 되는 시대에는 사물만 부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역시나 부품화 되니 각자가 지닌 역사성과 고유성은 없게 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자꾸만 멀어져 간다.

 

 

 

부처님의 사상은 연기와 무아의 공사상.
아비달마 부파불교.
 
연기니까 무상한 것은 없다.
영원하다라고 하는 자아는 영원할 것이라고 하지만 고정되질 않는다.
우리의 마음은 계속 머무는 (주) 하고 싶지만 노병사로 간다.
 
무상 무아 고.
 
무아 : 오온무아 색-물질. 수-감각적. 수-수용작용.상-표상.행-의지. 식-의식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나니
 
영화 영상의 그림속에 다이아가 좋다고 무대위로 올라가는 여자는 없다.
그이유는 무상이고 무아라는 거승ㄹ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세상이다.
스크린은 환이다.
 
자성의 세가지.
1. 연기라 하더라도 자성은 있다(실유자성)
2. 연기이므로 자성은 없다(무자성공)
 
 
하이데거는 각각의 고유성을 주장했다.
 
실일체유부 - 고유성 - 연기 - 유자성
종관학 - 실체성 - 연기 - 무자성
 
중국으로 가면 건불교 즉 견성 - 자성과 불성을 바로 보고 찾자는 것이니
소승에 가깝다.
선불교 - 본래성 - 연기를 깨닭을 수 있는 자성이 있다
선불교는 중국적 불교이다.
불교는 중국 것이아니다.
공자 노자 장자 이후에 들어 왓다
성선설 성악설의 性은 마음과 살생(태어남)이 합친 글자이다.
 
연기=관계성

현대적으로보면 비실체성과 본래성의회복이다.

 

 

 

--산은 산이다 - 존재자성 - 자성自性 - 실유實有 = 중생의 삶(있다고 생각한다)
--산은 산이 아니다 - 無 - 空 - 진공眞空(모두 비운다 비우면 채워진다)= 어떠한 존재하는 것이 없다.
--산은 역시 산이다 - 존재자체 - 진여 - 묘유妙有
..無일때 존재자체가 나타난다 ->하이데거식 논리학적 방식.
불교의 無 ->자성을 부정(분별하지 않음).
 
無를 설명할수는 없다.
서양철학에서의無는 사유의 대상이 되질 않는다 龍같은 것..
서양의 형이상학은 존재만 생각한다.
無보다는 神의 영원한 존재만 긍정한다.
동양은 無에서 출발한다.
노자는 자연이고 無역시나 爲라고했다.
불교는 공이며 이것은 진여로 가는 것이다.
 
존재자는 존재한다.
여기서 우리는 존재자를 "무엇","본질"은 뭔가를 생각하고
하이데거는 존재자에게 존재하게 해주는 "존재자성"
이존재자는 우리의 밍의대로 처분할 수 있다.
 
왜 도대체 존재자는 있고 도리어 무는 아닌가?
 
서양의 학문은 존재자만을 철학의 사유이고 無는 사유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시각은 1면 밖에 볼 수 없으니 경험과 체험이 중요한 것이다.
 
불안과 공포 무의미와 맞닿닥뜨리면서 비로소 인생과 우주를 생각하게 된다.
그속에서도 잣나무는 잣나무다.
잣나무가있다는 것이 우주가 있다는 것이다.

니체-삶의의지 권력의 의지. 존재의 의미.

 

 

제25강 하이데거 철학과 불교 - 공(空)
 
연기 : 수많은 조건과 조건의 관계성.
 
色변화해가는 것 루빠
연기 - 무상,무아(실유가 없고) 나는 이름일 뿐이다. 5온(실제하는 것) -
무아-색수상행식.
 
현상 - 무상,무아 - 생성,소멸 - 스크린 모습
본체 - 요소들 - 계속존재 - 필림 컷트들
영화 화면은 실유가 아니고 필림은 실유이다.
 
설일체유부 - 연기이므로 자성은 있다. 我空法有
중관학파 - 연기이므로 자성은 없다. 我空法空
我를 부정 하니 無我
 
모든 것이 공이면 공도 포함된다.空亦復空
허전함을 느끼고 허전함에 집착하면 불교는 아니다.
 
세상의 실상은 연기이므로 공이다.
 
空이란 연기하여 드러난 모든 것에는 자성이 없으므로 분별하여
집착할만한 것이 없다는 깨우침을 주기위한 최소한의 표현일 뿐이다.
 
비우라는 그것 역시 붙잡아서는 안된다.
空과 假의 중도
 
하이데거 :  無 - 존재자성 거부 - 존재자체
불교 : 空 - 자성거부(실체성) - 진여의 실상(진공묘유) 비우니 드러난다.
 
진짜 악몽은 귀신보다 어두운 심해에 빨려들어가는 꿈이다.
출처 : 그리하여
글쓴이 : 지나가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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