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발췌한 내용은 소승이 가장 관심을 갖는 종교와 과학의 연계성과 보완성에 관한 내용 중 하나입니다. 불교적으로 이해하면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연기법과 공(空)에 대한 것이라 할수있습니다. 전체 내용은 불교와 과학 중 "과학이 종교를 만날때"에 있습니다. <성 법> ------------------------------------------------- 보어에 의해 발전된 양자물리학에서의 상보성원리는 확대되어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도 적용되어 왔다. 한 실험에서 전자 혹은 광양자는 입자처럼 행동하지만, 다른 실험에서 전자는 파동처럼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보어는 우리는 언제나 실험계와 연관된 원자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며 결코 이 둘을 분리시켜 이야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말하자면 관찰 과정과 관찰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지켜보는 구경꾼이 아니라 배우이며, 우리가 사용할 실험 도구를 선택한다.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관찰이라는 상호 작용 과정이지 관찰자의 마음이나 의식이 아니라는 것이 보어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보어는 인간 지식의 개념적 한계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 그 자체를 알아낼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임마뉴엘 칸트에 공감했다. 자연을 특정한 개념 모델에 억지로 꿰어 맞추려 한다면 다른 개념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셈이다. 인과적 설명과 시공간적 설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위치나 운동량 가운데 하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 하나의 개념 집합이 사용되면 될수록 상호 보완적인 개념들의 집합이 동시에 적용될 가능성은 낮아진다. 원자 세계는 고전물리학의 개념들이나 관찰 가능한 현상들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상반된 한계가 발생한다.
보어는 상보성에 대한 사고가 두 종류의 모델로 분석할 수 있는 다른 현상들에 확대 적용될 수 있음을 제안했다. 곧 생물학에서의 기계적 모델과 유기적 모델, 심리학에서의 행동주의 모델과 내성적 모델 철학에서의 자유 의지 모델과 결정론적 모델, 신학에서의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모델과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모델 등이 그 예이다.
나아가 어떤 학자들은 과학과 종교의 상보성을 언급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쿨슨(C. A. Coulson)은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과 그에 관한 보어의 일반화를 설명한 다음, 과학과 종교는 하나의 실재에 대한 상보적인 설명들이라고 했다. 이러한 견해는 과학과 종교를 비교적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도록 해준다(과학과 종교가 하나의 실재에 대한 설명들이라 하더라도 완전히 독립적일 수는 없다). 이러한 사고는 제5장의 '육체와 영혼 : 상보적 관점들'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또 과학과 종교가 상호 보완적인 언어라는 주장은 제6장에서 더욱 논의 될 것이다.
상호 보완성, 즉 상보성이라는 용어는 물리학 이외의 분야들에 확장 적용될 수 있는데, 그 경우 다음과 같은 두 가지에 주의해야 한다.
첫째, 모델들이 동일한 실체를 다루며 동일한 논리 형태일 경우에만 상호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파동과 입자는 단 하나의 실체(예를 들어 전자)에 대한 모델들이고, 그것들은 똑같은 논리 수준에 있으며 이전에 같은 학문 분야에서 채택되었다. 하지만 과학과 종교의 경우, 이러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이를테면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실천되며 인간 생활에서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과학과 종교를 대안적인 언어라고 부르며, 한 언어 안에서 똑같은 논리 수준에 있는 모델(예를 들어 하느님에 대한 인격적 모델이나 비인격적 모델)을 위해 상호 보완성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물리학 이외의 분야에서 상호 보완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그것은 비유적인 것이 아니라 추론적인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물리학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 두 가지 대안 모델 또는 학설의 집합의 가치가 입증되어야만 한다. 물리학에서 유용한 방법들이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반드시 성과를 거두리라고 볼 수는 없다.
셋째, 상호 보완성은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을 정당화 시켜 주지 않는다. 그것은 모순된 주장을 회피하는 데에, 통합을 위한 모색을 거부하는 데에 사용될 수 없다.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에 내재된 역설적인 요소는 과장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전자는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파동 같은 모습과 입자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는 전자에 대한 확률적 예측들이 적용될 수 있는 하나의 통합된 수학 구조를 갖고 있다. 통합 모델을 모색하기 위한 예전의 시도들이 양자이론보다 실제 실험자료들과 더 잘 일치하는 이론을 만들어 내지 는 못했지만, 새로운 통합모델에 대한 모색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언어와 사고의 한계를 용인함으로써 제약이 가해지더라도 일관성은 모든 사려 깊은 탐구에서 여전히 중요한 관념이다.
요약하면, 양자이론에 관한 도구주의자들의 해석과 상보성원리는 모두 고전적인 사실주의가 유지될 수 없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어떤 이는 독립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학에서의 도구주의와 종교에 대한 도구주의자들의 이해를 결합시킨다. 그러나 비판적 사실주의가 고전적 사실주의와 도구주의 사이에서 대안을 제시한다. 비판적 사실주의는, 과학과 종교 두 분야의 개념과 모델은 한계를 가지고 있으나 언제 선택적이며 부적절하게나마 실제 세계를 다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모델이란 일상생활에서 이끌어 낸 유추에 의해 직접 관찰되거나 가시화될 수 없는 실재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다. 만약 과학과 종교가 하나의 공통 세계를 다루는 것이라면, 비판적 사실주의가 주장하듯 두 분야 간의 의미 있는 대화를 위한 기회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