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를 체득하면 윤회는 없다 / 방경일 4. 무아와 진아의 관계 사문 종교, 특히 불교의 융성으로 소멸의 위기에 처하게 된 바라문교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문제의 해결을 시도한다. 불교를 적대시하던 바라문교는 오히려 불교를 포용하면서 힌두교로 변신을 추구했는데 그 결과 인도에서 불교는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었고 힌두교는 인도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대의 종교가 되었다. 그런데 현재 붓다가 비쉬누 신의 화신으로 힌두교 사원에서 모셔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업보윤회나 무아와 같은 불교의 많은 가르침이 힌두교의 가르침 속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힌두교에서 주장하는 진아가 바로 불교의 무아라고 본다. 달리 말하면 불교의 무아 개념을 힌두교가 받아들여 진아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19세기 이후 힌두교의 전통 속에서 탄생한 성자들은 진아(眞我)를 찾을 것을 주장했다. 남인도 따밀 지역의 대표적인 힌두교 성자로 활동한 라마나 마하르시(1879~1950)는 진아를 찾을 것을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자아탐구라는 방법은 선종(禪宗)에서 제시한 화두와 비슷한 방법이라서 일부 불교도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보다는 그가 제시한 진아라는 개념이 불교에서 주장하는 무아와 사실상 동일하다는 점이야말로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라마나 마하르시는 진아를 찾고 나면 진아는 무(無)임을 알게 된다고 주장했으니 그의 진아는 결국 붓다의 무아인 것이다. 북인도의 대표적인 힌두교 성자인 마하라지(1897~1981)는 진아라는 개념도 방해물에 불과하다며 곧바로 무(無)를 찾을 것을 주장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마하라지가 주장하는 ‘아(我)도 세계도 모두 없는 절대 무의 경지’는 바로 붓다가 주장한 제법무아의 경지인 것이다. 라마나 마하르시의 전법제자들도 불교의 가르침들을 사용했다. 안나말라이(1905~1995)는 스승처럼 진아를 통한 무아의 발견을 제시했고, 파파지(1910~1997)는 언제 어디서나 무아임을 가르쳤고, 락슈마나(1925~현재)는 무심(無心)을 통한 진아의 발견을 가르쳤다. 보다 특이한 점은 락슈마나의 전법제자인 사라담마(1959~현재)의 경우 최후의 깨달음을 얻고 난 다음에 일체는 대공(大空)임을 체득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교의 주요 가르침은 힌두교의 중심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필자는 위에서 언급한 힌두교의 성자들을 힌두교의 전통 속에서 나타난 붓다들이라고 본다. 하지만 근본불교주의자들은 이들이 진아를 주장한다고 해서 외도로 몰아 버리고, 화두제일주의자들은 이들이 화두를 주창(主唱)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깨달음이 낮은 단계의 것이라고 폄하해 버린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근본불교주의자들이나 화두제일주의자들이 진아나 무아에 대한 종교체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위 진인이라고 불리는 라마나 마하르쉬나 마하라지 등에게는 진아는 유아(有我)가 아니라 무아이다. 하지만 진인이 되지 못한 사람들, 즉 종교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진아는 또 다른 하나의 개체아(個體我)일 뿐이다.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