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를 체득하면 윤회는 없다 / 방경일 1. 들어가는 글 2008년 봄에 나는 지인과 함께 도봉산을 찾았다. 우리는 적당한 곳에 앉아 점심도 먹고 그동안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받게 되었다. 지인: 70세까지만 살다가 가야지! 나: 우리의 황우석 박사님이 계시는데 무슨 소리 하는 거요? 언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지 모르는데 몸을 바꿔가며 한 3만 년은 살다 가야지! 지인: 고장 잘 나는 이런 몸으로 70세까지 살면 됐지 3만 년은 무슨……. 나: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안 봤어요? 그 주인공처럼 뛰어난 능력을 가진 몸으 로 바꿔서 계속 살면 되잖아요. 이 몸이 망가지면 정상적인 다른 생체에 기억만 옮 기면……. 잠깐, 이거 인간의 정체성이 ‘경험과 기억’이란 말인가? 지인: 그렇지? 나: 그럼 윤회는 뭐야? 아무것도 아니잖아! 이거…… 붓다가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붓다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나의 의구심을 풀기 전에 <공각기동대(攻殼機動隊)>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 보자. <공각기동대>는 오시이 마모루(押井守)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해졌지만 원래는 만화가인 시로 마사무네(士郞正宗)의 작품이다. 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한 2029년의 일본이 무대인 이 만화(영화)에서는 주인공인 쿠사나기를 비롯해 전뇌화(電腦化)되고 의체화(醫體化)된 인간들이 등장한다. 전뇌화란 인간의 뇌와 컴퓨터가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어 있어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의체화란 인체를 인간이 만든 몸으로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쿠사나기는 어릴 때 사고를 당하여 몸 전체가 의체인 전신의체 인간이다. 전신의체이긴 하지만 최고급이고 쿠사나기의 강인한 의지로 인해 생체와 별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힘이나 도약력 등등, 기능면에서는 훨씬 뛰어나다. 아무튼 테러 진압과 같은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쿠사나기는 몸이 망가지게 되면 미리 대기하고 있던 똑같이 생긴 의체로 몸을 바꾸는데 이때 전신(前身)의 뇌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은 그대로 후신(後身)의 뇌에 전달되고 이를 통해 쿠사나기는 자아 정체성을 유지한다. 이렇게 필요할 때마다 몸을 바꿀 수 있으므로 결국 쿠사나기는 진시황이 그토록 바라던 영생불멸을 얻은 것이다. 쿠사나기가 몸을 바꾸는 것은 일종의 윤회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자아정체성을 이어 가면서 몸을 바꿀 수 있다면 윤회는 고통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차라리 즐거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을 괴롭게 만드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사라지게 하는 복제기술이 일반화되어 한 인간이 경험을 통해 축적하는 모든 기억을 유지하면서 몸을 바꿔 갈 수 있다면 인생은 고해(苦海)가 아니라 낙해(樂海)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윤회는 근절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장려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신체적인 영생을 얻은 인간의 삶에 정신적인 번민이라는 변수를 대입한다고 해도 적어도 윤회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니 사실 물리적인 존재의 형태를 바꾸면서 경험과 기억을 전달하는 윤회 자체가 일종의 영생인데 우리는 붓다라는 눈먼 소경에게 이끌려 불구덩이나 낭떠러지로 가고 있는 다른 소경들이 아닐까? 과연 붓다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 이런 불경스러운 생각은 ‘붓다의 육성으로 된 가르침에 뭔가 잘못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는데 해답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던 나는 2004년에 흥미로운 논쟁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울산대 김진 교수에 의해 제기되어 일단의 불교학자들이 반박을 가한 ‘무아-윤회 모순론’에 대한 논쟁이었다. 대부분의 불교학자는 김진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무아윤회’를 주창했는데 김진의 구상에 불교 쪽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동국대 윤호진 교수는 <무아․윤회 문제의 연구>라는 그의 책에서 무아와 윤회를 동시에 주장하는 것은 모순임을 주장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무아와 윤회의 동시 주장은 모순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붓다가 가르침을 편 직후부터 시작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이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무아윤회라는 주장은 전적으로 궤변에 불과하지만 무아와 윤회를 동시에 주장하는 것은 전혀 모순이 아니다. 모순이기는커녕 무아와 윤회는 환상의 콤비처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진리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아-윤회의 모순을 주장하거나 그 모순을 극복하느라고 무아윤회를 주창(主唱)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그들은 모두 ‘전도된 몽상가들’일 뿐이다. 사고가 여기에 이르자 나의 뇌리에는 ‘거짓말을 한 이는 붓다가 아니라 이들 전도된 몽상가들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과연 어느 쪽이 거짓말을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무아-윤회의 완벽한 진리체계에 대한 탐구를 시작해 보자.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메모 :